홈메이드(Homemade, 2020) #넷플릭스 ①

코로나19의 공포와 실태가 전지구를 뒤덮었다. 지난 봄 유럽과 미주 등지에서는 봉쇄령이 내려졌다. 각국의 영화감독은 집안에 갇혀서도 작품을 만들었다. 17개 작품이 있는데, 넷플릭스상 에피소드 이름은 각 감독의 이름으로만 돼 있다. 귀찮았나 보다.

 

1. 라주 리 <클리시-몽페르메유>

배경지는 프랑스 파리에서 동쪽으로 약 17.2km 떨어진 몽페르메유(Montfermeil).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팡틴이 코제트를 맡은 여관이 있는 도시다. 소설 속 가난하고 비굴하고 참혹한 군상이 현대에 얼마나 나아졌을까. 동명의 영화(소설을 영화한 작품이 아닌 현대 파리를 배경으로 한 2019년작.)를 만든 감독이다.

 

55일간 이어진 봉쇄령. 소년 버즈는 집 안에만 머무르며 스마트폰 앱을 뒤적이거나 숙제를 하고 책을 읽고 홈트레이닝을 한다. 그리고 드론을 띄워 주변 아파트 곳곳의 풍경을 촬영한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고급 주거 형태에 해당하지만, 프랑스의 고층 아파트는 주로 제3세계 이주민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졌다.) 드론 카메라를 의식하고 '왜 찍냐는 듯' 항의하거나 시선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고. (200% 허락 안 받았을 것 같은데.. 초상권 침해가 걱정되네^6;;) 여성 배우자의 목을 조르며 장면 밖으로 사라지는 남성 이웃도 포착됐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규칙을 지키며 식료품을 배급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 대부분은 여성이다. 대체로 히잡을 두른. 5분 정도 마을 풍경을 보여준 뒤, 장 밥티스트 블랑샤르(Jean Baptiste Blanchard)가 1772년에 쓴 <신사의 규범> 인용구가 등장한다.

Si les temps sont durs et mauvais, pour qui le sont-ils?
현재가 가혹하다면 누구에게 그러한 것인가?

 

2. 파올로 소렌티노 <밤 끝으로의 여행(Voyage Au Bout De La Nuit)>

로마 배경의 피규어 인형극. 끊임없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엘리자베스 영국 왕과 프란시스 교황. 이 둘은 서재와 정원 곳곳을 누비며 담화를 나눈다. 감독의 집이 얼마나 넓은지.. 지루할 새 없이 화면이 바뀌고, 둘의 대화에서는 감독의 유머 감각 풍자 정신이 돋보인다. 선을 넘을 듯한 아슬아슬한 농담을 주고 받다 다정하게 춤도 춘다.

 

<유스> <그때 그들>을 만든 감독. 온 가족이 모여 피규어를 옮기고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며 화각을 고민했을 풍경을 떠올리니 귀엽다. 아니 근데 배경은 이탈리아 로마, 언어는 영어, 제목은 프랑스어야 왜ㅋㅋㅋ 로마 가고 싶다ㅜㅜ

"로마는 이렇게 아름답군요. 공허하고 절박하며 고독하죠." "우리처럼요."

 

3. 레이첼 모리슨 <행운아들(The Lucky Ones)>

엄마가 다섯 살짜리 아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에는 집안 곳곳에서 노는 아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등장하다,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도 나온다. 코로나19라는 현실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엄마 몫이니, 좋은 것만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전염병의 공포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우리가 얼마나 행운인지를 알아달라고도. 두 엄마의 따뜻한 사랑.

 

감독은 촬영 감독으로도 활동하는 레이첼 모리슨. 배우자의 이름도 레이첼이다. 촬영 감독답게.. 영상미가 좋다. 로스엔젤레스가 배경. 

 

4. 파블로 라라인 <Last Call>

마지막 영상 통화를 나누는, 헤어진 연인. 남자는 요양원에, 여자는 집에 머물고 있다. 남자는 자신이 얼마나 파멜라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그리워하는지 끊임없이 설토한다. 혼자 계속 떠드는 것만 봐도 왜 헤어졌는지 알겠는 느낌.. 여자는 한심해 하는 듯 짜증이 나는 듯 표정이 밝지는 않다. 자신이 죽기 전에 한 번만 보러 와달라 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여기부터 반전. 짧은 영화여도 반전이니까 스포일러 경고.) 그리고 딴 여자들한테도 전화 다 돌렸냐고 묻는다. 네 놈 속 다 안 다는 듯이. 아니나 다를까 다른 여자친구들과 나눈 비디오 컨퍼런스가 이어서 등장한다. 모두 하나같이 남자의 불행을 즐기는 듯하다. 기분 째진다 이 거짓말쟁이야, 기침하다 혼자 잘 죽어라^^ 이런 느낌. 마지막 일갈이 압권이다. '바이러스 만세다!'래 ㅋㅋㅋㅋㅋ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간호사에게 다른 전 여친한테 또 영상 통화를 걸어달라 하는 것으로 마무리.

 

<재키> <네루다>를 만든 칠레 감독. 노익장 배우들을 데리고 비디오 컨퍼런스로 영화를 찍을 생각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감정 고양시키는 베토벤 현악4중주 음악도 찰떡. 산티아고/부에노스아이레스 배경.

 

좋아서 첨부하는 베토벤 현악 4중주 6번 B플랫 장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