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웨딩 인 뉴욕(After the Wedding, 2020)

괜찮은 소재와 빈약한 시나리오의 만남. 줄리안 무어, 미셸 윌리엄스, 두 명배우의 열연으로 겨우 하드 캐리한 영화. 뉴욕을 잔잔하게 담은 영상미,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 마지막 인도 풍경 정도가 볼 만 했다. 

 

인도 고아원에서 일하는 이자벨(미셸 윌리엄스)은 고아원 자금이 부족해지자, 새로운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 고향 뉴욕으로 돌아온다. 굳이 뉴욕으로 와달라는 요청. 제 자식처럼 아끼는 남자아이가 눈에 밟혀서인지 너무 가기 싫음이 역력하다.. 예비 후원자는 성공한 여성 기업가 테레사(줄리안 무어)다. 주말에 있을 딸의 결혼식을 준비하랴 사업을 하랴 정신없이 바쁜 테레사는 갑자기 이자벨을 결혼식에 초대한다. 결혼식에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더 알아가자고. 주말까지 뉴욕에 있을 생각도 없던 이자벨은 황당해 하고, 결혼식에 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굳이 호텔 방까지 결혼식에 입을 옷까지 배달시키는 테레사. 이자벨은 결국 결혼식에 간다. 이미 신부 신랑 입장까지 마친 참. 그러다 테레사의 남편 오스카(빌리 크루덥)을 보고는 놀란다. 피로연이 시작되고 오스카 역시 이자벨을 보고 놀랐는지 여긴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갑작스런 테레사와 신부, 신랑의 등장으로 대화는 종료되고, 테레사의 제안으로 다 같이 기념 사진까지 남기게 된다. 해가 저물고, 신랑에 이어 신부가 축사를 시작한다. 자신이 얼마나 아빠를 꼭 빼닮았는지, 엄마를 고를 수 있었던 행운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부모에게 헌정하는 신부의 이야기에 놀란 이자벨은 황급히 자리를 뜬다.

 

중반 스포일러. 이자벨은 저 신부가 자신이 낳은 아이임을 깨닫고, 오스카에게 왜 입양하기로 한 아이를 자신에게 말도 없이 혼자 키우고 있었던 거냐고 묻는다. 오스카는 내일 전화해서 설명하겠다 말하지만,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한 이자벨은 직접 이들의 저택을 찾아 오스카와 소리 높여 싸운다. 오스카와 테레사는 딸 그레이스(애비 퀸)에게 진실을 들려주고, 그레이스는 친모를 찾아가 데이트를 한다. 테레사는 여전히 이자벨에게 후원 의지를 보이는데, 오히려 가족이 되었으니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테레사의 말이 들을수록 이상하다. 오스카의 과거 모습을 캐며 질투를 하는 듯하다가도.. 후원금을 받으려면 뉴욕에서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우기고, 이번 주말에 자신이 두 아들을 데리고 여동생 집에 가 있을 테니 자신의 집에 찾아와 오스카와 시간을 보내며 구체적인 후원 내용을 논의하라고 한다. 오스카는 그냥 아티스트인데.. 이자벨은 테레사의 행동의 처음부터 의심쩍었다며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고 오스카에게 말한다.

 

후반 스포일러. 오스카는 테레사의 서랍 위에 달린 새 둥지가 망가진 걸 보고 자신의 작업실에 가져와 고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테레사가 들이닥쳐서 왜 자기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냐고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다. 이자벨이 테레사가 수상쩍다며 떠난 뒤, 오스카는 고친 새 둥지 장식을 다시 서랍 위에 설치한다. 그러다 테레사의 서랍을 열게 되고, 자물쇠로 잠긴 작은 정리함을 발견한다. 거기엔 테레사의 약이 들어있다. 주치의와 통화를 해, 테레사가 곧 죽을 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 오스카. 테레사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일부러 오스카의 옛 사랑이자, 첫째 딸의 친모인 이자벨을 찾아 뉴욕으로 부른 것이다. 테레사의 시한부 선고를 오스카, 이자벨, 그레이스가 차례대로 알게 되고, (그 와중에 그레이스는 이혼을 결심한다.. 신혼생활 단 한 장면으로 어물쩡 넘어가는 무책임한 연출) 테레사가 죽기 싫다며 오열하는 연기를 선보이고(영화의 잔잔한 태도와 상반되는 감정신에 무척 당황.. 명연기였지만 분위기상 갑자기 너무 튀었음).. 얼마 후에 죽는다.. 이자벨은 그레이스와 초딩 남자아이 둘의 엄마 노릇을 하는 듯하다(이렇게 아무 저항감/이질감 없이?ㅋ).. 그리고 인도로 잠시 돌아가 아끼는 소년에게 같이 뉴욕에 가서 살자고 제안하지만 친구들이랑 헤어지기 싫다고 쿨하게 거절당하며 영화는 끝난다.. 허술하고 재미없는 엔딩이 아닐 수 없다.. 드론으로 보여준 인도 마을 풍경은 예뻤다.

 

 

그런데 원작이 있다고 해서 지금 쓰다가 놀람.. 원작인 <애프터 웨딩(After the Wedding, 2006)>은 덴마크 영화로, 주요 인물의 성별이 바뀌어 있는 듯하다. 원작은 좀 더 재밌을라나? 원작을 봐야 감상이 더 분명해질 것 같다.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바트 프룬디치는 줄리안 무어의 남편이라고 한다. 각본가를 욕해야 하나 연출가를 욕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한 사람이 다 한 거라니.. 유일하게 칭찬할 점은 모성애에 절절 매지 않았다는 것. 20년 뒤에 재회한 딸이 왜 자기를 버렸냐고 따져 물어도 별다른 변명이나 초조함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좋았다는 것.

 

미셸 윌리엄스는 계속 빨간색 스카프를 망토처럼 두르고 등장하는데. 소매가 없으니 꼭 쥐거나 팔짱을 껴서 폐쇄적인 바디 랭기지를 취하지 않으면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그 아슬아슬함이 그 캐릭터의 성정만큼이나 답답해 보였다. 그리고 테라스나 울타리에 기대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도 많다. 평생을 봉사활동으로 헌신했지만, 가슴이 뻥 뚫려 있어 채워지지 않는 사람.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