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My Unfamiliar Family, 2020)

사진 느낌 너무 좋다.. 사진은 촬영 다 끝나서 행복해 하는 배우들의 모습.

누구나 가슴팍에 하나쯤은 품고 사는 비밀.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오래 전 틀어진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구심점에 두고, 그 사이에 묘하게 낀 세 남매의 각기 다른 인생관, 하지만 같을 수밖에 없는 삶을 보여준다. 등장인물 사이에 얽힌 복잡하고 때로는 섬세한 감정을 긴장감 있게 풀어낸다.

 

올해 본 한국 드라마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이자 인생 드라마. 한을 푸는 듯이 원초적인 심리를 파고들어 묘사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작품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오랜 세월 냉전이었던 부부 진숙(원미경)과 상식(정진영). 세 자녀는 이들의 냉랭한(실제로는 서로를 증오하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진숙은 상식에게 졸혼을 선언하고, 화만 내던 상식은 행방불명된다. 이들 가족은 상식의 동료와 불륜 상대로 추정되는 여인의 증언을 따라 그의 행방을 추적한다. 그리고 자주 간다는 산행길 언저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상식. 병원에서 깨어난 그의 시간은 스물 두 살에 머물러 있다. 청년 상식은 누구보다 다정하고 낭만적인 사람. 진숙에게 끊임없이 애정 공세와 사랑 고백을 퍼붓는다. 졸혼을 결심했던 진숙은 당황스럽고, 세 자녀 역시 며칠 전과 극명히 달라진 아빠의 낯선 모습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드라마는 그토록 사랑하던 진숙과 상식이 어떤 까닭으로 증오하는 사이가 되었는지 하나씩 단서를 드러낸다.

 

첫째 딸 은주(추자현)는 차가울 만큼 냉철하고 똑똑한 변리사다. 대학 시절, 트럭을 몰던 아버지가 심하게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노릇을 한 적이 있다. 그때의 고되고 외롭던 감정이 아직 가슴 깊숙이 응어리져 있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가 동생인 은희는 두고 자신만 데리고 집을 나가 함께 죽으려고 했던 (오해의) 기억도 강렬히 남아 자신을 괴롭힌다.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갔을 때, 아빠가 사준 새 옷을 입고 아빠가 해준 다정한 요리를 기다리던 동생의 해맑음은 더 큰 상처로 남아, 은희에게 오랜 적대심을 품어왔다. 남편은 의사이고, 임신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무언가 이상하다.

 

둘째 딸 은희(한예리)는 언니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부분을 극도로 배제한, 비교적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인물이다. 출판사에서 일하는데 주변에선 글을 써 보란 권유를 받는다. 은희 자신도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느라 또래들처럼 자유롭게 청춘을 즐기지 못했던 억울함이 있다. 어릴 때 엄마가 언니하고만 집을 나갔던 일로,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품고 있다. 대학 때부터 9년을 사귄 남자친구가 몇 년 동안 양다리였단 사실을 알고는, 감정에 휩쓸린 여파로 언니와 절친 찬혁을 몇 년씩이나 안 보고 지냈다. 이것을 갑자기 후회하고 화해를 청하는 것으로 드라마 초반부를 채운다. 그리고 새로 온 상사와 묘한 관계에 접어든다.

 

막내 아들 지우(신재하)는 그냥 막내다.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와 아빠의 사이는 좋지 않았고, 아빠와의 추억이 거의 없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누나들 사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본 적이 거의 없다. 중재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자신을 유일하게 챙겨준 것이 은희 누나의 절친 찬혁이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카메라를 선물해주고 사진을 가르쳐준 찬혁을 친형처럼 따른다. 그가 차린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찬혁(김지석)은 저마다의 사정과 고민으로 화합하지 못하는 이 가족에 끼어든 손님이자 중립자다. 적어도 세 남매의 성격과 사정을 가장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조용히 챙겨준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의 최대 피해자다. 애꿎은 남의 가족에게 휘둘리고 있는. 은희의 남사친으로서의 면모만 보자면,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지가 무슨 스위스도 아니고 끝내 중립적인 태도만을 고수하는 건 조금 질리더라.. 이건 (스위스도 그런 점에서 싫은) 나의 개인적인 감정이다.

 

이 드라마의 공식적인 주연은 은희와 찬혁이다. 그런데 이건 투자를 받기 위한 명목상 배역인 것 같고, 실질적으론 가족 모두가 주인공이다. 투자 제안서 쓰는데 '주인공: 6인'으로 제출하는 게 잘 안 먹히겠지.. <남자 셋 여자 셋>도 아니공.. 결국에는 모든 캐릭터를 사랑하고 애정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 모두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투영할 수 있어, 자아 성찰을 하게 해주는 구석도 있다.

 

리허설할 때는 구루프를 꼭 하고 있구나.. 너무 귀엽땅

개인적으로 정진영 배우는.. 정재영 배우, 박희순 배우와 헷갈릴 정도로 닮았다고 생각하는데(안면인식장애..) 보는 내내 상식 역에 너무 젊은 배우를 캐스팅한 게 아닌가 싶어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배우의 실제 나이가 1964년생인 걸 알고서도 어색해 했다. 원미경 배우(1960년생)보다 4살 밖에 적지 않은데.. 아무래도 정진영 배우의 무대적인, 연극적인 연기가 좀 과장되게 느껴져서 더 그런 인상을 받은 듯.

 

원미경 배우는 아마 시청자 모두가 똑같이 느꼈을 걸. 어떻게 저렇게 곱고 아름다운가 하고. 젊은 시절 사진 찾아보면 더 놀란다. 아무튼 한 많고 사연 많고 절절한 캐릭터와 104% 들어맞았다!

 

다른 배우들도 모두 훌륭 of 훌륭.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늘 솔직한 사람으로서, 역시 관계가 지속 가능하려면 솔직해야 한다, 느끼게 해준 드라마. 마땅히 해야 할 이야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배려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순간을 모면하기엔 좋아도 능사는 아닐 것이다. 

 

스포는 안 했다고 생각한다..ㅎㅎ 다들 꼭 보시길!!!

 

언젠가 넷플릭스에 올라오겠지.. 또 보고 또 보고 싶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