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My Mister, 2018)

두세 달 전에 봤는데 아직 리뷰를 안 썼네. 아이유-이선균이라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조합과 제목부터 '나의 아저씨'라 부르며 그 아저씨와 소녀 사이의 관계를 부추기는 의도에 거부감을 심하게 느껴서 볼 생각을 안 했었다. 나와 같은 이유로 이 드라마 안 본 사람 정말 많을 걸. 2018년 봄이면 한참 바쁠 때이기도 했고. 아무튼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정주행함.

 

이야기는 예상보다 인간적이고 절절했다. 아이유, 이지은이 맡은 '이지안'은 찢어지게 가난한 스물 한 살 아가씨. 자신을 쫓던 빚쟁이를 칼로 찔러 죽였지만 정당 방위를 인정받았는지 무혐의로 풀려났고, 지금은 그 아들에게 쫓김을 당하고 있다. 지안에겐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노쇠한 할머니와 투덜거리면서도 도울 건 돕는 친구뿐이다. 빚을 갚기 위해 취직한 곳은 자신에겐 너무 과분한, 번듯한 건축 회사. 파견직으로 들어왔다. 근무하는 팀의 부장이 이선균이 연기한 '박동훈'이다.

 

동훈은 의좋은 삼형제 중 둘째. 형은 대기업을 다니다 해고를 당한 뒤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했고, 이혼 위기에 처한 신용 불량자다. 동생은 영화 감독인데, 첫 작품을 만들다 실패 혹은 포기한 이후로 아무것도 안 하며 지내고 있다. 셋이 모이기만 하면 동훈에게 '너는 꼭 회사를 그만두지 말아라. 우리집의 마지막 희망인 너라도 있어야 엄마 장례식장에서 엄마도 위신이 선다'는 식으로 설득(?)하며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 엄마(고두심)를 세치 혀로 여러 번 죽이곤 한다.

 

막상 동훈은 사내 정치에 휘말려 궂은 일만 맡다 보니 지쳐 있는 상태다. 대학 때 은근 무시했던 남자 후배 도준영(김영민)이 고속 승진을 하며 자신의 상사로 있는 것. 게다가 도준영은 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와 불륜 관계라, 동훈을 회사에서 내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그래서 이용한 것이, 혹은 역이용당한 것이 이지안의 존재다. 이지안더러 박동훈에게 접근해 둘이 부적절한 관계인 척 증거를 만들라 한다.

 

금전적으로 쪼들리는 지안은 준영에게 거액을 요구하고 계획을 실행한다. 그러다 점점 미련할 정도로 착한 동훈에게 연민과 정을 느낀다. 동훈은 지안을 돕고 구원한다. 형제와 동네 친구들은 외롭고 힘들게만 살아온 지안에게 인정을 알려준다. 동훈에 대한 지안의 감정은 후반부에서 짝사랑으로 표현된다(만 인생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도와준 이에 대한 존경심을 착각한 거라 생각함). 동훈은 지안에게 순수하게 연민만을 품는 듯하다. 그런데 형 '상훈'이 동훈 주변에 지안이라는 아이가 있다는 걸 알고는 둘의 관계를 부추기는 척 호기심을 표하는 척하며, 젊은 여성에 대한 욕망을 '도덕적인 캐릭터로 설정된 동훈 대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인물이 인생이라는 고된 칼날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뱉는 대사는 쓸쓸한 공감을 이끌어 낸다. 모든 장면에 진중하고 깊은 감정과 정성이 깃들어 있고, 각본도 연출도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방식이 어쨌건 결국엔 인간의 따뜻함과 희망을 제시하고 위안을 안겨주는 드라마. 지안이가 늘 웃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보기를 추천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다.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폭행 묘사(감독 변태냐? 강간 사건을 다룬 영화라고 해서 강간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는 건 매우, 무척, 아주 잘못된 일인 것처럼 폭행 묘사도 그렇게 적나라해선 안 된다.), 24살 차이가 나는 박동훈과 이지안을 애정 관계로 설정했다가 논란이 일자 뒤늦게 수정한 점(실제로 대본이 언제 완성됐고 머 그런 건 모르겠으니 확신할 수는 없다. 논란이 일자 tvN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물 관계도를 수정했다는 것만 확인된 사실이다.). 그리고 불행 전시 포르노라는 비판.

 

분명 우리 사회, 아니 우리들의 의식 수준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불과 몇 년전까지는 괜찮은 것으로 용인되었던 일도 더 이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졌다. 미투 운동과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왔다.

 

영화 <레옹>도 오랫동안 명작으로 추앙받았지만, 소아성애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실제로 나탈리 포트만은 <레옹> 덕분에 유명세를 얻긴 했지만 (그 어린 나이에)그만큼 고통스러운 성추행을 겪었다고 출연을 후회한다고 말한 적 있다. 작품 자체가 꼭 정확하게 그것을 그린 게 아니어도,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과 파급력을 고려해야 한다. (아래 '더보기' 링크는 관련 기사)

2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진행된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여성의 행진’(Women's March) 행사에서 성추행 폭로운동단체 ‘타임스 업’(Time‘s Up·시간이 됐다) 티셔츠를 입고 연설자로 나선 포트만은 12살의 나이로 출연한 첫 영화 ‘레옹’ 이후 계속해서 성희롱을 당했음을 고백했다.

영화 ‘레옹’에서 부모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소녀 마틸다 역을 맡았던 포트만은 ‘레옹’ 개봉 후인 13살 때, 한 남성으로부터 그의 강간 판타지에 관한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포트만은 “한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나의 18번째 생일이 ‘나와 합법적으로 잠을 잘 수 있는 날’이라고 밝혔다“며 “영화 평론가들은 리뷰에서 나의 봉긋한 가슴에 대해 평을 남기기도 했다”며 그간 겪어 온 성희롱에 대해 폭로했다.

이어 “나는 13살의 나이에 성적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으며, 남자들은 나의 몸을 대상화해 지적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것 마냥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포트만은 “내가 13살에 받은 편지는 나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줬다”며 “내가 누군가로부터 존중받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나의 몸을 감추고, 작품 선택을 반드시 가려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포트만은 어린 시절부터 겪은 수차례의 성희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키스신 등이 포함된 작품을 거절하는 등 그간 스스로 억제하며 살아왔던 과거에 대해 밝히며 “이로 인해 얻게 된 ‘얌전하고 보수적이며 진지한’ 배우라는 나의 명성과 싸우는 것을 선택했다”고 연설자로 나선 배경을 밝혔다.

한편 나탈리 포트만은 영화 ‘블랙 스완’으로 2001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이에외도 영화 ‘오만관 편견’, ‘재키’, ‘브이 포 벤데타’ 등에 출연한 바 있다.

김혜란 동아닷컴 기자 lastleast@donga.com

www.donga.com/news/Entertainment/article/all/20180123/88323261/2

 

아이유 역시 가수 활동을 하며 (특히 뮤직비디오, 화보) 로리타 콘셉트를 선보였다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도 아이유의 음악과 모든 것을 사랑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때는 괜찮았어도 지금은 아니다. 실제로 <나의 아저씨>가 방영되고 있을 때, 이 땅의 수많은 아저씨라 불릴 만한 사람들이 유행하는 작품을 핑계삼아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증언도 꽤 나왔다. 그들을 향해 "이봐요 당신이 이선균이야? 정신 차려!" 같은 반박에 그칠 게 아니라, 초장부터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 가난하고 괴로운 지안 같은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아저씨의 괴롭힘에 시달릴까. 이 드라마를 본 수많은 지안이들이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착각하고 합리화할까 봐 두렵다.

 

 

<나의 아저씨>라는 제목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어릴 때 <키다리 아저씨>라는 소설을 배우면서 우리는 '아저씨'라는 명칭에 무의식적으로 낭만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원작을 논외로 하고도, 만화나 그림책에서 그 아저씨를 잘생기고 젊은 청년쯤으로 묘사했으니 더더욱..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잖아? 세상을 더 잘 알게 되면서, 많은 사건사고를 접하게 되면서, 아저씨는 그런 존재가 아님을, 남자건, 여자건 우리는 분명히 학습했다. '나의 아저씨'라는 표현만으로도 몸서리 칠 사람은 나 하나가 아니다. 아이를 키울 때 어떠한 나쁜 영향이라도 줄까 봐 말을 가리고 콘텐츠를 가리는 것처럼, 성인인 전국민을 상대로 한 작품을 선보일 때도 매스컴이라는 권력, 대중 매체로서의 영향력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연출 의도가 대놓고 '아저씨를 미화하려는' 데 있다. 삼형제 중에서 독보적으로 순수성을 품은 '동훈'을 맨앞에 세워 놓고는 다른 캐릭터를 이용해서라도 지안에 대한 욕망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대체 왜인가. 아래는 이에 대한 명료한 지적이다. 남자 기자가 쓴 글.

문제는 그것이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판타지라는 데 있다. 아저씨, 그러니까 중년 남성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과도한) 자기 연민을 그려낸 <나의 아저씨>가 시청자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명제가 무엇일까. 바로 '아저씨들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듯하다. 당신의 주변을 서성이는 수많은 아저씨들은 선량하다. 해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든지 너를 도와줄 준비가 돼 있다. 그들을 미워하지 마라. 욕하지 마라. 돌 던지지 마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청춘을 다 날려버린 안쓰러운 사람들이니까. 변변한 특기 하나 가질 삶의 여유도 누리지 못한 채 술만 퍼마시는 불쌍한 중생들이다. 다가가도 물지 않는다. 해치지 않는다. 왜 선입견을 갖고 아저씨들을 대하는가.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맺으면 되지 않느냐. <나의 아저씨>의 '아저씨를 위한 찬가'가 참으로 눈물겹지 않은가.

드라마 기획의도는 더 명확하다. "아홉살 소년의 순수성이 있고, 타성에 물들지 않은 날카로움도 있다"는 아저씨. 그에겐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따뜻함과 우직함도 있다. 제작진은 이 박동훈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인간의 매력'을 보여주는 아저씨"를 그리고자 했음을 밝힌다. 이어, 박동훈을 통해 "길거리에 넘쳐나는 흔하디흔한 아저씨들. 허름하고 한심하게 보이던 그들이, 사랑스러워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제작진의 의도는 김원석 감독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극중 아저씨들에 감정이입된 어떤 이들은 드라마가 현실적이라고까지 말한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뉴스를 보자. 아니, 우리 주변에 있는 아저씨들을 떠올려보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여성들의 몸매를 훑어대고, 추잡한 성적 농담들로 하루 일과를 채우고, 회사에선 여직원을 상대로 성희롱이나 하고, 남직원들에겐 지적질과 꼰대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저씨. 여성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아저씨들은 이렇다. 아저씨들에게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연대는 '판타지'이지만, 여성들에게는 '공포'다. 

미투 운동에 의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도, 대중들의 신망을 받거나 사랑받던 아저씨들이었다.

글 김종성
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424162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하고, 악플로 고통받던 연예인이 자살을 했을 때, 언론에선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자세히 다루었지 않은가. 즉각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 자살률이 급증했다. 이후 자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 규정이 생겨났고, 죽음의 방식에 대한 언급은 금기가 되었다. 아무리 예술이라 해도, 표현 방식이나 주제도 훨씬 더 세심하게 다루고 여러 번 고민해야 한다.

 

 

박해영 작가는 전작 <또! 오해영>에서도 많은 논란을 만들었다. 데이트 폭력을 상기시키는, 남성 캐릭터의 매우 폭력적인 면모, 그것조차 사랑이라고 믿는 여성 캐릭터(<나의 아저씨>에도 똑같은 관계가 묘사되었다.). 해당 드라마를 챙겨보며 좋아하긴 했지만 그런 장면과 암시가 나올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박해영 작가님 또 다른 내 최애작 <청담동 살아요>에선 안 그러셨는데.. 왜 그런 관계에 꽂히신 건가요. 가정폭력을 겪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사는 모든 이들을 모독하고 오히려 궁지에 밀어넣는 행위다. 제발 다음 작품에서는 그런 소재를 쓰지 않으시길 바란다. 펜을 칼처럼 쓰는 건 기레기나 악플러의 범위만이 아니다. 드라마 작가도, 시나리오 작가도 자신의 펜이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제발.. 부탁드릴게요, 작가님. 이렇게 깊이 있는, 인생을 관통하는 작품을 만드시는 분인데, 여러 논란과 비판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을 지니셨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