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1996)

최고! 너무 재밌다. 90년대 영화 최고! 새로운 볼거리 없다 없다 노래 말고 90년대 명작을 찾아보자!

 

케이블 채널 '인디필름'에서 해주길래 갑자기 끌리듯 본 영화. 몰입도가 장난 아니다. 솔직히 결말은 뻔하디 뻔했지만, 그건 <프라이멀 피어> 이후의 살인사건을 다룬 법정 스릴러 영화가 모두 <프라이멀 피어>을 모방했기 때문이지. (한때 열광했던 <앨리 맥빌>의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다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던 거겠구나, 싶었다.)

 

사건의 단서를 은근슬쩍 하나씩 풀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탁월한 스토리텔링 스킬.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또 보고 다시 봐도 재미있게 만드는 능력, 명작의 요소를 충분히 갖췄다.

 

제목도 마음에 든다. 원초적 공포라니.

 

어느 날 시카고 전역에서 추앙받는 카톨릭 대교주 러쉬맨이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리고 지목된 용의자는 열아홉 살의 복사(교주의 시중을 드는 사람) 애런. 교주의 몸에는 칼로 70번 넘게 찔린 흔적이 있고 가슴에는 알 수 없는 일련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관심종자 끝판왕이자, 극악무도한 범죄자 전담인 변호사 마틴 베일은 공짜로 애런의 변호를 자처한다. 마틴 베일은 애런의 무죄를 믿지만, 다른 모든 이는 애런이 거짓 진술을 하고 있으며 당연히 그가 진범이라 믿는다. 사형 선고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사건.

 

검찰에서는 마틴과 과거사가 얽힌 재닛 베너블 검사에게 이 사건을 맡기고, 재판을 수차례 이어가는 동안 둘 사이엔 긴장감이 팽팽하다. 마틴 베일은 현장에 있었을 제3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이 영화에 에드워드 노튼을 발탁한 캐스팅 담당자와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은 지금까지도 얼마나 뿌듯할까! 순둥순둥 두부같이 생긴 앳된 얼굴로 순수함과 광기, 악랄함을 천연스레 오가는 능력! 매력! <프라이멀 피어>로 골든 글로브상은 탔는데, 아카데미상은 못 탔다. 그런데 이 정도면 주연 아닌가? 왜 조연상을 탔지? 물론, 연극 신에서만 활동하다 영화로는 첫 데뷔였으니 이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에드워드 노튼 입덕 영화다. 솔직히 에드워드 노튼이 거의 다 함. 괴물같은 배우의 시작..

 

눈깔 뒤집기.. 왤케 맘에 들지..

 

리처드 기어는 내가 아는 모든 영화에서 흰머리로 나온다. 찾아보니 이 영화가 <귀여운 여인>보다 6년이나 뒤에 나왔다. 이걸 찍을 땐 이미 40대였고.. 30대 땐 긴 공백기를 가진 듯하다. 리처드 기어의 종교가 티베트 불교라니. 영화 외적인 얘기만 해서 괜히 미안하네. 별달리 할 말이 없다, 리처드 기어가 '리처드 기어'다웠지 뭐. 그의 영악하면서 인자한 미소는 배우로서 정말 훌륭한 도구다. 그런데 솔직히 그 이상의 전율을 일게 하진 않는다.

 

재닛 역할의 로라 리니 배우는 아름답다. 잠깐, 근데 이 분이 넷플릭스 시리즈 <오자크>의 주연이시라고? 웬디 버드가 이 분..? 아무튼 <프라이멀 피어>의 검사 재닛은 검사 출신 변호사 마틴 베일과 연인 사이였지만, 안 좋은 기억뿐이다. 마틴 베일은 '너가 중대한 진실을 몰랐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된 거고, 니가 지금 이렇게 사는 거야'라는 식으로 항변하는데.. 진작 좀 알려주고 제대로 설득하지 그랬어? 답답할 정도로 중요한 것을 (타의에 의해)모름 당하고, 모르기 때문에 곧잘 이용당하는 캐릭터다.

 

마지막에 중요한 인물 모두(구남친, 검찰)에게 이용당한 걸 깨닫고 멘탈이 탈탈 털리는데.. 불쌍해 죽겠다. 아무튼 재닛은 영화의 주축 그리고 대사로만 언급되는 과거사에서 끊임없이 배제된다. 영화 평론가 듀나가 쓴 책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이 생각난다.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 여성 캐릭터가 얼마나 덜 중요하며 도구로써만 활용되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한다.

 

 

스포일러 주의. 중간에 섹스 테이프가 등장한다. 러쉬맨 대주교가 악을 정화하겠단 목적으로 구호소 청소년들을 데려다 섹스 테이프를 만든 것. 여기에 애런과 애런의 여자친구 린다, 알렉스가 동원된다. 이 테이프의 존재는 그 자체로 애런의 살인 동기를 입증하기에, 마틴 베일에게는 불리하지만, 마틴은 이것을 역으로 이용하기로 한다.

 

마틴의 전략에 걸려든 검사 재닛은 이 테이프를 법정에 제출하기로 하는데, 이것을 재판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함께 시청할 것처럼 장면이 넘어간다. 법정에서 이 테이프를 시청하는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지만.. 아니 저걸 왜 방청객까지 다 같이 봐? 싶어서 뜨악했다.

 

그리고 그 섹스 테이프를 '포르노 영화'라고 칭하는데, 2020년에 만들어진 영화였다면 '성착취물'이라 표현했을 거다.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면서도 씁쓸하다. 그리고 그 섹스 테이프에만 등장한 채, 완벽한 도구로써만 소모된 린다 캐릭터는.. 2020년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조금 빡치게 한다.

 

 

이 영화는 살인자의 다중인격 장애, 종교 단체의 우두머리가 벌이는 성폭력, 종교 단체와 연관된 정치적 사투와 음모 등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건드리지만, 슬쩍 건드리다 마는 데 그친다는 인상을 준다. 가려운 데를 긁다가 마는 느낌? (법정 모독을 이유로, 한 번은 판사에게 호되게 제지당한다. 해당 담화는 증언 기록에서 삭제되고 변호사 마틴 베일이 개인적인 앙심을 품고 복수를 위해 취한 간사한 행위로만 치부된다.) 종교 단체의 타락을 제대로 다룬 작품 <수포트라이트>가 그로부터 20년이나 지난 뒤에 나왔다는 사실 또한 씁쓸하다.

 

넷플릭스에도, 왓챠에도 없다. 구글 플레이, 유튜브(유료)에서 감상 가능. (아니 근데.. 영화 설명에 스포일러 포함 전체 줄거리 다 써놓으면 어떡해;;) 

www.youtube.com/watch?v=Up3JBt2uD7s&ab_channel=YouTubeMov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