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 2017)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1966년 발표된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1971년에 이미 영화화된 적이 있는 작품이다.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 콜린 파렐 주연. 칸 영화제에서 최고 감독상 수상. 그런데 호불호가 좀 갈리는 듯하다. 

 

배경은 미국 남부의 어느 기숙 여학교. 미국 남북 전쟁이 한창이다. 저택의 주인이자 학교 교장 마사는 전쟁통에 돌아갈 곳 없는 학생들과 교사 에드위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여전히 수업을 이어나가면서. 버섯을 따러 숲에 나간 어린 학생 에이미는 숲 속에 쓰러져 있는 적군 존 상병을 만난다. 두렵지만 크리스천의 관용을 베풀고자 존 상병을 부축해 학교로 돌아온 에이미. 선생과 학생 일동은 일단은 그를 살리는 데 집중하기로 한다. 마사는 존의 다리에서 파편을 하나씩 제거하고 상처를 꿰맨다. 대단한 의술..

 

존이 나으면, 이곳에 적군이 있음을 알리는 파란 리본을 달기로 했다. 그럼 존은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처음엔 대부분이 그에게 적대심을 품고 경계를 했지만, 점점 그에게 매혹당한다. 특히 마사와 에드위나, 학생 알리시아(엘르 패닝)가. 그러면서 모두의 관계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내용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 사람들이 매혹당한 건 모르겠고, 오랜 시간 금욕에 억눌린 여자들이 갑자기 발정이 나서 먼저 막 들이대는 것에 가까워 보여....

 

전쟁 중에도 평화를 유지하고 있던 여학교에 어느날 갑자기 남자가 한 명 등장했다고 해서 갑자기 모두가 turn on되는 것이 너무 이상함..

 

 

일단 영화의 모든 미쟝센과 자연과 저택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의상도 아름답고 배우들도 아름답다. 콜린 파렐은 내 취향이 전혀 아니어서.. 그냥 부담스럽기만 했고.. 그래서 왜 저 남자에게 매혹당하는 건지 이해를 1도 못 하겠다. 존은 선량한 군인을 연기하는 것에 충실했다. 여자들을 유혹했다기엔 너무 가만히 있었지 않은가.

 

어쩌면 감독의 개연성 부여와 설정 부족일 가능성도 크다. 존 상병이 사랑을 고백하는 상대는 에드위나다. 모두에게 호의를 베풀고, 자신에게 주는 호의를 거절하지 않지만, 대놓고 말로 표현한 상대는 에드위나뿐이다. 스포일러. 게다가 존이 에드위나에게 오늘밤에 만나자고 꼬셔놓고, 정작 찾아간 곳은 학생 알리시아의 방이다. (알리시아가 워낙 들이대긴 했지만..?) 에드위나는 알리시아가 떠든다고 생각해서 방을 찾아가고, 둘이 메이크아웃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곤 충격에 빠진다. 존은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 에드위나를 따라 나서고 에드위나는 그를 뿌리친다. 그러다 존이 계단을 굴러 떨어져서 의식을 잃는다.

 

마사는 존의 다리 상태를 보곤, 심각해졌다며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 한다. 그렇게 절단술을 하고.. 며칠 뒤 깨어난 존은 자신의 한쪽 종아리가 없어진 걸 보고 절규한다. 분노한다. 모두를 탓한다. 내가 너네들 방에 안 찾아가서 지금 복수한 거냐고. 이전의 젠틀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짐승처럼 난폭해진 존. 멍청한 알리시아는 존이 시키는 대로 열쇠를 찾아다 준다. 마사 교장이 총을 보관하는 함의 열쇠.

 

존은 총을 거머쥐게 되었고, 이제 이들의 왕으로 군림하려 한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살 궁리를 모색하는 상황. 에드위나는 성욕에 미쳐버렸는지 존이 자신을 농락한 사실은 말끔히 잊어버리고 날뛰는 존의 방에 찾아가 관계를 한다. 에드위나가 쾌락에 빠져 있는 동안 마사와 학생들은 존이 버섯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에게 독버섯을 먹여 죽일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와인과 버터에 맛있게 졸인 독버섯을 흡입하며 먹곤 즉사한 존. 이렇게 쉽게..? 긴장감도 드릅게 읎다... 학생들은 존의 시신을 커다란 면으로 감싸 바느질한 다음 대문 밖으로 내놓고 드디어 마침내 파란 리본을 건다.

 

압도적인 비주얼이나 매 장면 긴장감 넘치는 구성이나 다 좋다. 하지만 사소한 디테일을 약간만 더했어도 더 괜찮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주요 캐릭터에 어떤 성장 배경이 있었기에 외딴 곳에 고립되어 있어야 했는지 조금이라도 언급하거나, 존이 차라리 순정파 정직맨 연기하지 않고 초반부터 바람둥이 스멜을 풍겼거나 한꺼번에 들어오는 여성들의 호의와 관심에 내면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설정들.. 

 

원작에서는 흑인 노예 여성 캐릭터가 있었는데 소피아 코폴라 버전에선 삭제됐고, 커스틴 던스트가 맡은 에드위나도 원래는 흑인 혼혈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화이트워싱 논란이 있다. 아니 이 정도면 감독이 넌씨눈급 마이웨이 아닌가..ㅋㅋ 남부 지역이 배경이고 남북 전쟁 때 이야기니, 인종적 다양성은 오히려 캐릭터간 미묘한 분위기나 경쟁심 같은 걸 부추겼을 텐데.. 흠... ㅋㅋ 감독이 왜 그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

 

니콜 키드먼은 진짜 캐릭터랑 100% 매치. 우아하고 위엄 있으면서도 검은 욕망 품은 캐릭터 찰떡 소화.

 

커스틴 던스트는 음.. 잘... 모르겠... 조금 의외.. 그리고 왜 니콜 키드먼보다 늙고 지쳐 보여요... ㅜㅜ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리고 엄청난 지분의, 미친 매력의 소유자 엘르 패닝.. 일상에선 그저 해맑은 빙구미 넘치는 아이 같은데.. 영화 속에만 들어가면 온갖 매력을 뽐낸다.. 볼 때마다 감탄 또 감탄.

 

1971년작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