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Paterson, 2016)

짐 자무시 감독의 '시'와 일상에 관한 영화. 뉴저지 패터슨에 사는 시내 버스 운전수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의 어느 일주일이 나온다. 패터슨에게는 아내 로라(골시프테 파라하니)가 있다. 매일 아침, 패터슨이 먼저 잠에서 깨 출근 준비를 하고 로라는 한참을 비몽사몽이다. 흑백의 기하학적 무늬를 좋아하는 로라는 토요일에 있을 플리 마켓에서 컵케이크를 팔 생각에 들떠 있다. 컵케이크가 잘 팔리면 컵케이크 가게를 차리겠다는 꿈. 패터슨은 로라의 모든 꿈과 일상을 존중한다.

 

패터슨은 시내 버스를 운전한다. 운전하는 동안 어느 승객의 수다를 엿듣거나 한다. 단조로운 일상의 단조로운 감미료다. 쉬는 시간에는 조용히 홀로 앉아 공책에 시를 쓴다. 매일같이 성실하게. 그의 손글씨가 화면을 메운다. 패터슨은 집에 돌아와 로라와 저녁을 먹고 강아지 산책을 나간다. 산책길 중간에는 늘 펍에 들러 맥주를 마시고 돌아온다. 펍 주인과 수다를 떨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패터슨이 배출한 예술가, 유명인 따위를 언급하며.

 

 

로라는 패터슨의 시 쓰는 실력을 높이 산다. 패터슨에게 공책을 복사해서 카피를 만들어둘 것을 제안한다. 패터슨은 세상에 자신의 시를 내보이는 것에 관심이 영 없어보이지만, 로라가 말하는 것은 뭐든 들어주고 싶은 건지 뭔지 주말에 가서 복사를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토요일. 로라는 잔뜩 구운 컵케이크를 모두 팔고 돌아왔다. 자신의 컵케이크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며 기쁜 마음으로 가득 찬 로라. 로라는 외식과 영화 데이트를 제안한다. 마침 시를 쓰고 있던 패터슨은 작업실에서 공책을 들고 나와 거실에 둔다. 영화를 보고 돌아온 부부는 강아지가 갈기갈기 찢어놓은 시집이었을 공책을 발견한다. 로라는 화가 나서 강아지를 벌주려 한다. 패터슨은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지만 황망한 눈치다.

 

 

일요일, 패터슨은 혼자 산책을 간다. 자신이 패터슨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폭포 앞 벤치에 앉는다. 그러자 다가오는 일본인. 그는 시와 뉴욕시파,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의 배경이 궁금해서 패터슨을 찾았다고 한다. 일본인은 자리를 뜨며 패터슨에게 새 공책을 선물한다. 때로는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말과 함께. 패터슨은 공책을 펴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다. 평온한 일상의 재시작이다.

 

 

일단 캐스팅이 완벽하다. 아담 드라이버의 사유가적인 면모와 시인이자 버스 드라이버라는 설정이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릴까. 게다가 이름이 드라이버라니. 패터슨이 은밀한 예술가라면, 로라는 활달한 몽상가다. 패터슨의 꿈을 부추기고 자신의 꿈에 귀기울이는 로라. 로라를 연기한 골시프테 파라하니는 정말 매혹적이다. 이란 출신 배우라 독특한 억양을 구사하는데 그 억양과 반쯤 잠든 듯한 눈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적인 영화. 매일의 변주곡.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인의 시를 읽고 싶은데 정보가 별로 없어서 아쉽다.. 시를 쓰는 삶.. 60 넘어서 글을 깨우친 할머니들이 쓴 시를 보면 정말 경이롭다. 타고난 시인 같다. 글을 모르고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보다 더 많은 글을 읽으며 자랐을 이들은 시와는 너무나도 먼 인생을 살고 있다. 무언가 말하고 싶다는 바람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