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바디스 파인(Everybody's Fine, 2009)

아내를 잃고 처음 맞이한 명절. 평생 전선 피복 작업 일을 해온 프랭크(로버트 드니로)는 전형적인 가부장이다. 혼자 지낸 지 반 년이 훌쩍 넘었고, 어느 때보다 더 자식이 그립다. 딸 둘, 아들 둘.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모두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번 명절에 집에 오지 못한다고 한다. 프랭크는 외롭고 적적한 만큼 큰 결심을 한다. 미국 서부에서 동부까지 골고루 자리잡은 네 자식의 집을 깜짝 방문해 놀래켜 주는 것. 장거리 여행은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특히 비행기는 절대 타선 안 된다고 말하는 의사를 설득한 프랭크.

 

프랭크가 처음 찾아간 집은 뉴욕에서 화가로 활동하는 데이비드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건만, 데이비드의 아파트 문은 꾹 잠겨 있다. 다 늙은 노인이 밤 늦게 갈 곳도 없으니 찾은 곳은 24시간 카페. 그곳에는 비슷한 처지의 노인이 시간을 떼우려 자리잡고 있다. 다음날 아침에도 데이비드를 만나지 못한 프랭크는 문 틈으로 편지 한 통을 남긴 채 다음 도시를 향한다.

 

 

이번에는 건축 잡지에나 나올 법한 멋진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는 에이미를 찾아간다. 잘 나가는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에이미는 아들, 남편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터. 분명 손자가 아파서 못 온다고 했는데, 도착해 보니 아이는 팔팔하다. 손자와 놀다 보니 사위가 중국 음식을 사들고 집에 들어온다. 넷이 함께하는 식사. 프랭크는 젓가락질이 영 서툴러서 당황하는 와중에, 손자가 제아비에게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을 보고 더 당황해 한다. 게다가 에이미는 당장 출장을 가야 한다며 아버지가 며칠 더 머물지 못하도록 한다. 이 집에 흐르는 기묘한 기류를 뒤로 하고 프랭크는 다음 도시로 향한다.

(번역가가 영화를 안 보고 번역만 했는지, 에이미가 남편과 통화하는 장면에서 무슨 상사랑 통화하듯이 깍듯한 존댓말로 말한다;;;)

 

 

세 번째로 찾아간 자식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을 뮤지션 로버트다. 그가 몸담은 오케스트라를 찾아가니, 로버트는 지휘자 단상에 서 있질 않고 커다란 퍼커션 앞에 앉아 있다. 그동안 거짓말을 해온 것이다. 지휘 활동은 취미로 하는 것뿐.. 로버트는 이것저것 변명을 늘어놓느라 정신없이 진땀만 뺀다. 며칠 더 머물려는 아버지를 라스베가스로 떠나보낸다. 버스 표를 사는 것까지 확인했지만, 시차가 다른 도시를 오가느라 시간이 헷갈린 프랭크는 막차를 놓쳐버린다.

 

사실 네 형제는 서로 소통 중이다. 데이비드가 멕시코에서 마약 매매 혐의로 체포됐는데, 체포하려는 찰나 당황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마약을 모두 삼켜버려 혼수 상태로 입원 중이다. 이 소식을 알면 프랭크가 놀라 쓰러질 지도 모르니 모두 거짓말을 하느라 진을 뺀 것이다. 에이미는 당장 멕시코로 날아가 데이비드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던 것이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는 로버트는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한가해서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로버트가 도착 시간까지 알려줬기에 로지(드류 베리모어)는 아버지를 데리러 나가지만, 마지막 버스를 놓친 아버지는 도착하지 않는다. (휴대전화 좀 사주지ㅜㅜ) 그 시간 프랭크는 야간 기차를 타러 기차역으로 가서 홈리스처럼 보이는 청년을 도와주려 한다. 선의를 베풀려 했지만, 자신의 돈을 모두 빼앗으려 하자 몸싸움을 하다 꼭 먹어야 하는 약이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드류 베리모어가 등장하는 내내 영화에 어찌나 생기가 도는지! 정말 사랑스럽고 멋진 배우다..!!

 

 

프랭크는 라스베가스에 도착해 로지를 만난다.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로지는 근사한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모양. 네 자식 중 가장 따뜻하게 아버지를 맞이해주는 로지. 그런데 로지의 친구가 신생아를 잠시 맡아달라 부탁하기 위해 아파트에 들린다. 로지는 전망이 끝내주는 고급 레스토랑에 디너를 예약했지만, 프랭크는 아파트에 머물러도 괜찮다며 낯선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프랭크는 처음으로 묻는다. 너희는 엄마에겐 모든 것을 다 말했으면서 왜 자신에겐 그렇게 말을 아끼는 거냐고. 내내 다정하게 굴던 로지는 그제서야 진실을 이야기한다. 아빠는 너무 엄격하지 않았냐고, 다들 아빠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고. 특히 데이비드는 압박에 시달렸다고. 자식을 만나기 위해 로드 트립을 자처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다정하고 로맨틱한 면모를 봤지만 사실은 그도 권위적인 가부장이었던 것이다.

 

결말 스포일러

 

역시 로지가 막내여서일까.. 프랭크에게 비행기를 태워서 집에 보낸다.. 비행기 타면 안 되는데... 프랭크는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흔들리자 그동안의 긴장이 폭발했는지 심장 마비를 일으킨다. 쓰러진 프랭크는 꿈을 꾼다. 자식이 어린 시절 모습으로 등장해 함께 식사를 하는 꿈. 사실 프랭크는 로드 트립에서 아이들이 자신에게 한 거짓말을 모두 진작에 눈치챘다. 로지와 함께 돌봤던 아이가 사실은 로지의 자식이라는 것까지도. 모두가 꿈 속에서 진실을 들려주지만, 데이비드만이 석연치 않다.

 

이때 로지는 사실 레즈비언인데, 성 지향성에 혼란에 겪는다는 내용을 번역가가 싸그리 무시하곤 "로지는 자신이 누굴 좋아하는지도 몰라" 식으로 번역했다..;; 10년 전 번역인가.. 아무리 그래도;;;

 

꿈에서 깬 프랭크는 병원에 누워 있다. 자신이 깨기를 기다리던 에이미, 로버트, 로지를 마주한다. 프랭크는 제발 진실을 알려달라 말한다. 에이미는 데이비드가 약물 문제로 죽었음을 고백한다..

 

 

프랭크는 데이비드의 아파트 근처 갤러리에서 보았던 데이비드의 그림을 사기 위해 뉴욕을 다시 찾았다. 하지만 그 그림은 이미 팔리고 없다. 데이비드의 작품이 혹시 더 들어오면 연락해 주겠다는 갤러리 직원의 말.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서는 찰나, 직원이 서둘러 프랭크를 부른다. 데이비드의 아버지인 걸 몰라봤다고. 데이비드가 평소에 얼마나 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했는지 말해준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페인터가 아닌 아티스트가 되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절대 예술 활동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직원은 데이비드가 남긴 다른 작품을 창고에서 꺼내 보여준다. 그 작품은 전봇대를 잇는 전선을 그린 그림이다. 프랭크가 평생 만들어 온 전선 피복. 끝내 만나지 못한 데이비드는 그렇게나마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했다.

 

 

마지막 장면은 이듬해 명절. 이번에는 모든 자녀가 집에 왔다. 엄마 없이 함께 보내는 첫 명절. 프랭크는 처음으로 직접 칠면조 요리를 만들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마음 따뜻해지는 참 좋은 영화 ♥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