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맨(Birdman, 2014) (+)동양인 인종차별

<버드맨>에서 한물 간 왕년의 배우 '리건 톰슨'. 한때 '버드맨'으로 인기 몰이를 했다. 버드맨은 검은 날개 옷을 입고 하늘을 날며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다. 버드맨을 연기한 마이클 키튼은 실제로 <배트맨> 시리즈에서 '배트맨'을 연기한 왕년의 배우다. 물론 영화 속 '리건 톰슨'과는 달리 꾸준히 활동하며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반면 리건 톰슨은 나이는 61세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보지만, 이후 이렇다 할 업적이 없으니 내적 공허와 불안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리건 톰슨은 전재산을 다 털어 새로운 작품을 준비한다. 브로드웨이 데뷔작! 본인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며 주인공까지 연기한다. 사흘 동안 리허설에 가까운 오픈 프리뷰를 마치곤, 브로드웨이 평단의 본격적인 심사가 이뤄질 오프닝 무대가 펼쳐진다. 이 영화는 본 공연이 제대로 올라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나흘간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구조는.. 카메라가 극장 곳곳을 누비며 관객의 눈높이와 걸음을 생생하게 리드한다는 점이다. 카메라가 인물의 이동을 따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넘어가면서 한 장면이 2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데, 실제로는 장면이 계속 바뀐다. (대화의 맥락이 계속 바뀐다는 점에서.) 롱테이크처럼 보이지만 롱테이크가 절대 아닌 촬영/편집 기법. 마치 VR 뷰어를 쓰고 영화 속 인물들을 따라가는 듯한 이 생생한 분위기는 잘게 쪼갠 '재즈' 드럼 사운드로 더욱 강조된다.

 

리건에겐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샘이 있다. 엠마 스톤이 연기. 약물 중독에 빠져서 재활원에 갔다가 세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다. 지금은 아빠의 비서 일을 하고 있으며, 꼭 아빠가 없어도 극장 이곳저곳을 배회한다.

 

이 연극에는 4명의 출연자가 있다. 남자 둘과 여자 둘. 리건은 그중 여자 하나인 '로라'와 연애 중인데, 리건은 영 로라가 마음에 없어 보인다. 나머지 여자는 '레슬리', 나오미 와츠가 연기했다. 레슬리는 이 무대가 무척 소중하다. 리건과 마찬가지로 브로드웨이 데뷔 무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머지 남자 역할의 배우.

 

리건은 이 남배우가 영 못마땅하다. 연기를 거지같이 하거든.. 마지막 리허설 때, 때마침 연기 못하는 남배우 머리 위로 무대 장치가 떨어지고 심한 부상을 입는다. 리건은 사실 초능력을 쓸 수 있는 남자라서(ㅋㅋ;;) 자신이 빡쳐서 그 사고를 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절친이자 변호사이자 프로듀서인 제이크에게. 제이크가 이 영화의 동네북.. 리건은 온갖 잘 나가는 배우들 이름을 대며 당장 캐스팅을 바꾸자고 한다.

 

이때 열의에 찬 레슬리가 자신의 남자친구이자(영화에선 버자이너를 공유하는 사이라고 말함ㅋ) 브로드웨이 평론가라면 모두 찬양하는 연극배우 마이크를 불러온다. 무대 위 존재감과 연기력은 가히 광기 어리고 폭발적이다. 실제로도 또라이인 게 문제지. 이걸 연기한 게 바로 에드워드 노턴. 저 미친X 하고 욕이 절로 나는 캐릭터임에도 매력적임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미친 싱크로율의 저 배우는 누구인가, 찾아봤더니 에드워드 노턴이네. 몇 달 전에 본 <프라이멀 피어>에서 그 두부뽀짝한 반전 연기 펼쳤던 베이비가.. 이렇게 늙었구나ㅜㅜ 왜 더 치명적이고 섹시해지는 거야!! 똘기 넘치는 캐릭터 만나서 노났다.

 

아무튼 이 마이크가 연기는 정말 끝내주게 잘하는데.. 첫 프리뷰에서 사고를 친다. 술 마시며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마이크가 진짜 술을 처묵하고 있자 리건이 물이 든 술병으로 바꿔놓는데, 마이크가 중간에 이걸 알아채고는 관객들이 다 보고 있는데 분노를 퍼부으며 자신을 농락했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다. 무대 뿌셔놓는 건 덤.. 프리뷰는 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관객들이 낮은 가격을 지불하고 표를 사는 오픈 리허설 같은 거다. 정식 무대로는 치지 않는다. 다행이지만. 리건은 만만찮은 성질머리의 소유자기 때문에 마이크를 당장 해고하라고 지시하고 난리를 친다. 몇 시간 전에는 부족한 예산은 자신이 어떻게든 메꿀 테니 마이크를 고용하라고 우겼으면서..

 

빡칠 대로 빡친 리건과 뻔뻔하게 여유를 부리는 마이크. 리건은 제이크의 권유대로 잘 해결해보기 위해, 마이크에게 커피 한 잔 하자고 한다. 마이크는 근처 바로 리건을 데려가고, 그곳에서 유력한 평론가 디킨슨을 알게 된다. 프리뷰 망친 것에 그렇게 연연해 하지 말라며,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무대는 사흘 뒤에 있을 오프닝 무대라고. 그때 디킨슨이 와서 평론을 쓰면 진짜 승부가 나는 거라고.

 

여기까지는 프리뷰 첫 날 이야기다.

 

둘째날도, 셋째날도. 사건인지 사고인지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둘째날 사건은 진짜 역겨움..

 

둘째날인가, 마이크가 열을 내면서 리건에게 쏘아붙이는데. 그중 하나가, 마지막 장면에서 리건이 마이크에게 총을 겨눌 때, 가짜 총인 게 너무 티가 나서 본인이 생명에 위협에 받는 연기를 실감 나게 못 하겠다고, 총이나 제대로 된 걸로 쓰라고 외치는 말이다. 그걸 듣곤, 아, 그러다 빡친 리건이 자살 장면을 연기하려다 진짜 총을 들고와서 무대 위에서 실제로 죽는 이야기가 전개되겠구나, 눈치를 채버렸지 뭐야.. 아마 모두 이 즈음에서 그런 생각 했을 걸?

 

또 재미있었던 요소. 리건은 디킨슨이라는 평론가에게 극도로 미움을 받으며, 연기는 더럽게 못하지만 망토만 거치곤(슈퍼히어로 역할을 맡곤) 대중의 관심만 소비시키는 상업 배우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리허설이건 프리뷰이건 무대 위에 오르기만 하면 갑자기 발연기를 한다. 마이클 키튼이라는 배우의 실제 실력을 의심할 일은 아니지만, 에드워드 노튼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상반돼 보이게. 그것까지 쳐서인지, 연기를 소름돋게 잘했다! 미쳤다! 정도의 감상을 느끼는 덴 실패.. 물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못 탄 게 아쉬울 정도로 훌륭하셨습니다만.

 

그리고 리건이 버드맨에 빙의되어 브로드웨이 상공을 누비는 장면도 너무 좋았다. 난다는 건, 여지없이 자유의 상징이다.

 

그의 버드맨 빙의, 초능력 부리는 스킬이 어디까지가 망상이고 진실인지 그 경계선이 매우 헷갈린다. 중간에, 아 역시 망상이었구나, 깨닫게 만들어 놓곤, 다시 음.. 아닌가? 싶게 만드는.. 지점이 이 영화의 묘미다.

 

찰리 카우프만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영화.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보다 더 경쾌하게 만듦으로써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보다는 대중성과 흥미를 드높였다는 사실이 차별점. 강렬한 드럼 비트는.. 데이미언 샤젤이 떠오를 수밖에 없잖아...

 

브로드웨이 극장 뒤편이 이렇게 생겼구나. 뭔가 관객으로서 극장에 품은 호기심이 해결된 느낌이다. 꼭 극장 직원이 브이로그 찍어서 올린 것처럼 생생.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왜 엠마 스톤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는지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엠마 스톤 좋아하는데.. 연기 폭이 단조롭고 깊이가 없는 느낌이 있네ㅜㅜ 영화 속에서 묘사된 '상업 영화 배우'의 모델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종 차별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다.

1) 영화 초반, 엠마 스톤이 아빠 심부름으로 꽃 사러 가서 동양인 주인 앞에서 김치 냄새 난다고 욕하는 부분. "김치 냄새 난다"고 이야기하는 건 솔직히 괜찮다고 생각. 김치 없이 사는 우리도 냉장고에서 김치 냄새 나거나 하면 별로 안 좋아하잖아. 먹을 때나 좋아하지. 샘의 삐뚤어진 성격과 반항아적인 태도, 아버지 리건과의 골 깊은 갈등을 표현하기 위한 요소로 생각해줄 만함. 그런데 문제는, 굳이 옆에 동양인을 나란히 놓고, 그 사람도 기본적인 영어는 구사하는데, 위협적으로/불쾌하게 들릴 수 있는 발언을 소리지르듯 내뱉은 점과 그 동양인이 아무것도 못 알아들은 척 태연하게 꽃 영업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차라리 그 동양인이 (그 말을 알아들었을 리가 분명하고 영어 대사도 얼핏 말함) 불쾌함을 표시라도 했음 모를까, 아무 반응 없는 채로 연출했다는 건 동양인을 싸잡아서 귀머거리 취급한 거지. => 영화는 공식적으로 한국인 꽃집으로 표명.

 

2) 미디어들 초청해서 진행한 인터뷰. 두 명의 백인과 한 명의 (중국인으로 추정, 통역사를 동반한)동양인 저널리스트가 앉아 있다. 백인 기자가 '버드맨'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리건은 질린 듯해 보이지만 '버드맨'에 관한 답변을 하는데, 동양인 저널리스트가 흥분해서는 중국어 억양이 강하게 섞인 영어로 "<버드맨> 4가 나와요?"라고, 주제와 어긋나는 내용임은 물론, 기본적인 배우에 대한 파악조차 안 된 질문을 묻는다. 한 명은 지나치게 학구적인 질문, 한 명은 지나치게 가십성 짙은 질문을 하고 있는 와중에 동양인은 기본적인 말귀도 못 알아듣고(게다가 통역사가 옆에 있는데) 헛소리를 하는 캐릭터로 소비된 거다. => 영화는 공식적으로 일본 기자로 표명.

 

3) 후반부에 리건이 과음을 하곤 길바닥에서 쓰레기 봉투를 베고 잤는데, 내면의 '버드맨'이 말한다. "넌 꽐라가 되면 꼭 'Mongoloid' 같더라"라고. 이걸 넷플릭스에선 "넌 취하면 그런 저능아 표정이 나오지"라고 번역했다. 'Mongoloid'는 '1. 몽골 사람을 닮은; 몽골 인종적인, 2. 다운 증후군의'로 정의된다. 어원을 따져봤을 때 다분히 인종차별적인 역사가 짙게 반영된 표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미주중앙일보의 기사를 참조 바람: 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94274

[살며 생각하며] 동양인을 바보 취급한 다운증후군

이쯤 되면 감독이 동양인을 무척 싫어하는 것 같은데? 본인이 멕시코인으로서 당한 인종차별과 설움을 동양인에게 표출하려는 건지.. 공론화 안 된 게 신기하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그런지. 반면에 감독이 숀 펜에게 당한 인종차별은 매우 잘 공론화돼 있네!!

 

역시 동양인은 미국 사회에서 최하위 약자인가 봐.. 지긋지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