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東京タワー 〜オカンとボクと、時々、オトン〜, 2007)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릴리 프랭크'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릴리 프랭크는 배우 일도 하지만 일러스트레이션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가사, 소설도 쓴다. 일본 위키페디아 설명에 따르면 '멀티 탤런트'라고 한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고, <도쿄 타워> 주인공 이름 '마사야'도 그의 본명이다.

 

2시간이 훌쩍 넘는 이 영화는 릴리 프랭키의 분신인 '마사야'와 그의 어머니, 때때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2007년에 개봉된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정제된 톤이 있다. 작년에 만든 영화라고 해도 믿겠어.. (게다가 일본 영화가 극강의 세련미를 추구하진 않으니까.. 늘 수더분하잖아..)

 

일단 실제 삶과 가장 큰 차이점은.. 마사야의 외모겠지^-^ 릴리 프랭키가 꽤 개성 있고 예술가 같이 생기긴 했지만.. ㅎㅎ 이 영화에서는 온갖 찌질함을 오다기리 죠의 미모로 커버하고 있다. 진짜 릴리 프랭키처럼 생긴 사람이 연기했으면 열받아서.. 감동을 못 받았을 거다.

 

엄마가 술주정뱅이 아빠와 헤어지기로 한 뒤, 마사야는 엄마의 고향인 기타큐슈의 어느 탄광촌으로 이사를 간다. 여름방학이면 친할머니 집으로 가서 지내지만, 아빠는 여전히 아빠 역할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다 도시로의 유학을 결심하고, 열다섯 살 때부터 아빠와 함께 생활하다가 고등학교 시절엔 자취를 시작한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열심히 그리더니 결국 미술 전공을 한다. 엄마가 보내준 돈으로 담배나 사서 피우고 비행이나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고선 본격적으로 타락에 가까운 게으른 생활을 일삼는다.

 

이쯤에서 일단 짚고 가야 하는 것. 마사야의 엄마는 키키 키린과, 그의 딸 우치다 야야코가 연기했다. 젊은 시절은 우치다가, 중년 이후의 모습은 키키 키린이. 그런데 마사야의 아빠는 젊으나 늙으나 한 사람이 연기한다. <심야식당>의 마스터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배우 코바야시 카오루가. 연기 스펙트럼이 워낙 넓어서 작품에서 볼 때마다 놀라긴 하고, 젊은 시절과 늙은 시절을 모두 훌륭하게 연기했지만, 아니 무슨 캐스팅을 이렇게 해..ㅎㅎ 일본 영화계에 연기할 사람이 이렇게나 없나보다.. 진짜 없어 보여서 더 슬픔..ㅜㅜㅋㅋㅋ

 

다시 마사야 이야기로 돌아가서. 엄마가 그렇게 싫어서 떠났던 아빠의 모습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마사야. 함께 지내던 친구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같이 살던 집을 떠난다! 졸업도 어려워질 판, 마사야는 결국 엄마에게 고백을 한다. 지난 4년 동안 흥청망청 살았다고, 졸업도 못할 것 같다고, 중퇴를 할 수도 있다고..(그게 자랑이니ㅋㅋ) 엄마는 마사야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인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인지 동네 술집을 인수해서 운영하기로 결심한다. 그래도 한심한 삶을 이어가다가.. 도박판에 빠져서.. 돈 좀 보내달라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왈 "돈 이미 부쳤어. 아무리도 외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아, 네가 와야 할 텐데, 돈이 없을 게 뻔하니까. 신칸센 비를 보냈단다."

 

이 일로 살짜쿵 충격에 빠진 마사야. 급기야.. 엄마가 암에 걸려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마사야는 그제서야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고물 장수 일을 하다가 우연히 미술을 하면서 알게 된 학생과 마주친다. 그 친구는 배가 너무 고픈데 굶어죽을 수 없다며, 거리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래, 자극이 좀 되지? 마사야는 이 친구와 함께 새 집을 구해선 열심히 살기 시작한다. 일단 글을 써서.. 야한 글을 써서 기고를 시작.. 책도 내고. 아무튼 나름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자리를 잡아간다.

 

여러 여자를 거친 뒤, 완전 괜찮은 여자친구도 사귀기 시작했다. 미즈에 역의 마츠 다카코. 너무 예쁘니까 언급 안 할 수 없음. 마츠 다카코는 존재 자체가 개연성이다. 아무 대사를 안 쳐도, 모든 사연과 캐릭터가 느껴져. 중간에 잠깐 등장한 미야자키 아오이도 물론 너무 예쁨.

 

그동안 엄마는 가게를 정리했고, 친정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암 치료 때문에 병원을 자주 오가느라 돈벌이를 구하기도 어려운 모양. 마사야는 엄마를 도쿄에 불러서 함께 살까 고민을 한다. 엄마가 온다면 15년만의 동거다. 미즈에는 엄마 없이 자란 탓에 마사야가 해주는 엄마 이야기가 좋아서, 마사야의 결정을 지지해 준다.

 

그렇게 곱게 화장을 하고 도쿄에 온 엄마. 마사야의 친구, 지인이 늘 집에 드나들어서 대가족 같은 분위기다. 엄마는 아들 친구들에게 맛있는 걸 해주고 함께 술을 마시며 놀면서 어울린다. 친구들과 놀면서, 엄마는 아빠를 처음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때.. 아, 엄마는 아직 망나니 아빠를 사랑하고 있구나, 싶었다. 마사야는 약속한 것처럼 엄마에게 도쿄 명소를 구경시켜 주고 맛집도 다니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실화니까 가능한.. 늙어버린 엄마를 안타깝고도 담담하게 묘사할 수 있는 부분과 진정성 가득한 감정선이 이 영화의 특장점;;이다. 특히 마사야가 엄마의 도쿄행을 제안한 뒤, 엄마가 정말 도쿄에 가도 되냐고 묻고 또 묻는데, 그 직후에도 고향을 떠나기 전과 떠나는 동안을 정말 느긋하게 보여준다. (물론 1년에 한 번 이상씩은 봤겠지만)오랜만에 함께 살게 된 모자의 설렘 반 애틋함 반을 느긋하게 그렸는데 이 부분이 정말로 뭉클하다.

 

스포일러. 영화 후반부는 대체로 엄마의 암 투병기 위주로 흘러간다. 엄마가 또 암에 걸려서 병상에 있는 장면은 영화 초반부부터 나오고, 이 사실을 알고 시작했지만, 두 모자의 삶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중반부부터는 정말 가까운 지인인 것처럼 절절히 와닿는다. 그래서.. 쉴새없이 오열하게 됨 ㅜㅜ

 

마사야와 엄마의 더부살이는 점점 익숙해지고, 어느덧 7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마사야는 너무 바빠서 엄마랑 마주치는 시간도 얼마 없고, 엄마의 모습이 점점 짜증나는 모양.. 살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야이 새끼야.. 하면서 욕을 하게 되는..^^ 엄마가 아무래도 암이 위랑 간까지 퍼진 것 같다고.. 그게 느껴진다고 말해도.. 병원 진찰 빼먹지 말고 잘 다니라며, 암이 또 걸릴 리가 없다며 귀찮아 하더니. 결국 암이 엄청 퍼진 채로 재발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일단 입원은 했지만, 수술은 어렵다고 한다. 엄마는 미즈에가 용기를 줘서, 항암 치료를 받기로 한다. 항암 치료를 이틀 앞두고, 아빠도 병원을 찾아왔다. 곱게 화장을 한 엄마는.. 어색해 하면서도 수줍은 소녀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항암 치료라는 게 암 자체가 주는 고통보다 훨씬 큰 고통을 주니까. 엄마는 하루종일 괴로워한다. 엄마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마사야도 괴롭기만 하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이.. 키키 키린의 열연으로 (보통은 다큐멘터리에서도 좀처럼 다루지 않으니까)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끊임없이 헛구역질을 하고 신음을 내고 전신을 집어삼키는 고통에 어쩔 줄 몰라 몸을 이리저리 꼬고.. 엄마는 아들이 알려주길 거부한, 아들이 진행하는 저질 라디오 프로그램을 몰래 챙겨듣고, 아들의 졸업 증명서를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기며 더욱 힘을 내는 듯하다. 가끔씩 아빠가 찾아와 옛날에 못 보여준 다정함을 선물하고.. 아들을 통해 알게 된 젊은 친구들도 돌아가며 찾아온다. 너무 괴로워서 누가 왔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어보이는 게 정말 맴찢..

 

결국 엄마는 항암치료를 포기한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2-3개월. 마사야는 엄마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작업실을 겸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집을 구했다. 하지만, 마사야의 엄마는 숨을 거둔 뒤에야 새 집에 오게 된다.

 

엄마의 장례식. 마사야의 지인들은 마사야의 새 집에 모여 술을 마시고 떠들며 논다. 그 와중에 마사야의 출판 담당자는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 원고 독촉을 한다.. 상황은 이해하지만 원고를 안 보내주시면 지면이 비게 된다고.. 마사야는 빡쳐서.. 당신 같으면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그 앞에서 일을 하게 생겼냐며 화를 내고 전화를 끊는다.

 

엄마의 주검 옆을 지키며 슬퍼하는 마사야. 그런데 엄마의 환영이 등장해선 마사야에게 말을 건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은, 마사야가 일을 하는 모습이라고. 곧 있으면 엄마 몸이 불에 타서 사라지는데 내가 어떻게 웃긴 칼럼이나 쓰고 있냐고 안 된다고 말하는 마사야의 말에, 엄마는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그 마지막 시간 동안 엄마가 기쁠 수 있게 어서 글을 쓰라고 한다. 마사야가 연재하는 글의 주제는.. 겁나 웃긴 이야기, 뭐 이딴 거다.. 마사야는 세상에서 제일 웃긴 문장을 쓸 거라며 열심히 원고지를 채워나간다.

 

드디어 완성한 원고를 직원인지 후배인지에게 건네고, 나도 이제 함께 술을 마시겠다, 하는데(아깐 엄마랑 함께하는 시간이 아깝다며;;) 그 직원 왈, "저기.. 삽화를 안 그리셨는데요.." 마사야는 다시 책상에 앉아 그림을 완성하곤 엄마 옆에 눕는다. 그때 술과 음식을 나르던 미즈에가 방에 찾아와서.. 엄마가 처음 도쿄에 왔을 때 그 1년 동안 얼마나 행복하셨는지, 이걸로 평생 받을 효도는 다 받았다고,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었다며 엄마의 말을 들려준다..ㅜㅜ

 

장례식이 끝나고, 마사야는 엄마가 남긴 '엄마가 죽으면 열어보렴' 상자를 열어본다. 그 상자에는 엄마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와, 모자의 옛 흑백 사진, 옛 물건들, (번역이 없어서)알 수 없는 메모들, 미즈에에게 쓴 편지, 탯줄로 추정되는 물건..이 들어있다. 자신의 죽음을 (입버릇처럼 말하긴 했지만) 직감하곤 태연하게 삶을 마감할 준비를 했다는 게 또 눈물샘을 폭발하게 만들었지..

 

이 작품의 제목이 <도쿄 타워>인 이유는, 마사야가 도쿄에 온 지 10년이 지났을 때도, 엄마와 함께 산 지 7년이 지났을 때도, 언젠가 가야지 가야지 했던 곳이 '도쿄 타워'이기 때문이다. 또, 엄마가 마지막에 입원한 병원은 도쿄 타워 근처라, 병실 창밖으로 늘 도쿄타워를 내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사야는 엄마의 위패를 들고 도쿄 타워 꼭대기를 찾는다. 그곳에서 미즈에에게 엄마의 편지를 건네고,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실제로 릴리 프랭키가 누구랑 결혼했고 뭐 이런 건 모르겠지만, 마사야가 미즈에를 대하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태도는 정말 짜증났다. 미즈에는 마사야가 둘 사이에 대한 확신을 안 주니까 슬픔에 빠진다. 그러다 미즈에가 떠나면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비련의 남주인공 코스프레 할 거면서.. <500일의 썸머>에서처럼 말야.. 미즈에한테 잘해라 미친아..ㅜㅜ

 

영화 속 마사야가 찌질하고 한심하고 짜증나는 사람이긴 하지만, 또 사실 그렇게 다정하고 착하기는 어려우니까, 어쩔 수 없이 정이 갔고 무엇보다 서글펐다. 그 심성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거니까. 엄마는 아들이 건강하고 좋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면서도, 아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심지어 잔소리를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착하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욕망을 희생시키는 마음인 것 같아서..

(궁예인데.. 실제 인물이.. 그렇게 착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영화화되면서 많이 미화된 게 아닐까 싶음ㅎㅎ)

 

이 영화에서 다른 놀라운 점은 스쳐지나가는 단역까지도 꽤 훌륭한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미즈에 친구로 잠깐 등장한 사람, 암 진단해주는 의사들, 등등.. 눈에 익은 배우들을 총동원했다.

 

영상이 대체로 좋았는데, 탄광촌 풍경이 참 예뻤다..!

 

트리비아1. 릴리 프랭키는 퇴고를 일절 하지 않는다고 한다. 흠... 그게 말이 되나.... 대신에 담당 편집자가 엄청 고생하는 거 아냐..?ㅋㅋㅋ

 

트리비아2. 이 영화의 주제곡은 릴리 프랭키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상대편 아버지로 공연한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불렀다고 한다. 본업이 가수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