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쇼이(Bolshoi, 2017)

부산국제교류재단에서 개최한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러시아 영화 온라인 상영회를 통해서 봤다. 오늘 밤에!

 

러시아 촌구석 소녀 '율리아 올샨스카야'가 박자 감각과 유연함으로 볼쇼이 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율리아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 첫째 딸, 언제 소년원에 들어가도 이상할 것 없는 사고뭉치다. 입도 험하다. 한때 전도유망한 발레 무용수였지만 지금은 알코올 중독자가 된 블라디미르가 거리에서 앵벌이 공연을 하는 율리아를 발견한다.

 

율리아가 춤을 추며 시선을 뺏으면 친구가 소매치기를 하는 수법이다. 경찰에 고발해서 소년원에 가게 되자, 율리아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블라디미르가 경찰에게 뇌물을 주고 소년원행에서 탈출시킨다. 블라디미르는 율리아에게 박수 소리를 따라하게 만든다. 박수 소리를 따라하는지를 보고 발레를 가르치겠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영화 중반부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리고 약간의 훈련 후에 모스크바에 데려가 오디션을 보게 한 것이다.

 

사실 영화는 매우 식상하고.. 아마추어 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웃음소리가 흐르는 발레 연습실. 혼자 남아 몸을 푸는 주인공. 바를 매개로 여러 연령대의 소녀들이 바워크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디션 장면. 모든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왔지만, 율리아만 선생님과 왔다. 맥주 사 먹게 20루블만 달라고 조르는 한심한 선생.. 율리아는 그를 개 무시.. 선생은 자신의 옛 스승이었던 갈리나 미하일로브나 벨레츠카야를 우연히 마주치고, 율리아를 소개한다. 갈리나는 이 남자의 술 냄새에 몸서리치며, 율리아를 보려고도 안 하지만 오디션 제안을 받아들인다.

 

율리아는 오디션장에서 자신이 직접 안무한 이상한 춤을 추고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다. 괴상한 춤을 통해 보여준 탁월한 유연성 덕분인지 갈리나 선생님이 입김을 불어넣은 덕분인지, 그냥 영화 주인공이라서 그런 건지 결과는 합격이다. 율리아는 선생에게 맥주와 돈을 쥐어주곤 엄마한테 잘 말해달라고 한다. 일단은 가난에 직면한 삶 탈출..! 그 와중에 블라디미르 선생은 술 마실 거면 샴페인은 다리 상하니까, 코냑으로 마시라고 조언을 한다.

 

율리아 역할의 청소년 배우. 개성 있다.

율리아는 볼쇼이에 입학했지만, 매우 기본 동작인 탄듀가 뭔지도 모른단다. 방금까지 잘 해놓고.. 번역이 이상한 건가;; 이상한 골방에서 만난 카리나라는 착한 친구는 율리아에게 발레 용어와 기본 동작을 알려준다. 그리고 갑자기 얘네의 10대 시절로 건너뜀;; 술 먹은 채로 누가 더 훼떼 오래 도나 대결하기. 영화가 이렇게 좀 산만하게.. 약간 맥락없이 과거와 더 과거, 현재를 오간다.. 그나저나 나이 먹은 율리아를 연기한 배우의 얼굴이.. 적어도 20대 후반으로 보임ㅜㅜ 몰입 와장창.. (실제로 배우 마가리타 시모노바가 20대 후반 때 이 영화를 찍었네...)

 

아무튼 율리아는 모스크바에 왔어도 여전히 가난하다. 누가 먹다가 버린 초코바를 먹다가 갈리나에게 걸렸다. 갈리나는 넌 발레리나라며 체면을 지키라고 한다. 율리아는 돈이 없는 걸. 갈리나는 일단 율리아에게 자기 집 청소 알바를 시키고 용돈을 벌게 한다. 갈리나는 그런데 알츠하이머에 걸린 듯하다. 학생 이름도 까먹고 자기 집도 까먹는다. 율리아는 갈리나를 도우며 지낸다.

 

갈리나는 몇 년 후 졸업 작품 공연에서 주인공 오로라 역으로 율리아를 캐스팅하려고 한다. 경쟁자는 율리아의 절친인 카리나. 카리나는 부잣집 딸에다 신체 조건도 완벽하고 기본기도 탄탄하다. 기존 영화/드라마계에서 다루듯이 둘이 라이벌 의식을 가지진 않는다. 주어진 역할이나 성적에 꽤 순응하고, 서로를 지지한다.

 

카리나네 가족의 여름 휴가에 율리아가 함께 갈 정도다. 카리나 엄마도 율리아를 꽤 아끼는 (척하는) 것 같다.. 율리아가 좋아하는 듯한 남자애 미챠가 카리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해도, 약간 속상해하지만 절친을 시기하지도 않고 둘의 사이를 밀어준다. 카리나가 연애에 관심이 없어서 문제지.

 

율리아는 카리나보다 점프가 대단하고 타고난 재능이 있다. 무엇보다 갈리나가 율리아에게 높이 사는 건, 춤을 즐긴다는 것. 그런데 배우들의 춤을 보면.. 폴드브라도 카리나가 낫고 표정이든 몸짓이든 표현력도 카리나가 낫다. 게다가 율리아는 약간 거북목에 몸이 엄청 휘청거린다.

 

오로라 역할을 두고 갈리나와 다른 교사 사이의 의견 충돌이 있지만, 갈리나가 이긴다. 더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예산 문제겠지만, 그걸 결정하는 사람이 딱 둘뿐인 건 비현실적이다. ㅎㅎㅎㅎ

 

여기부터 스포주의. 카리나는 오로라를 못해도 별로 상관없는 것 같은데, 카리나 엄마가 끼어든다. 갈리나 선생님 집에 찾아가서 자기 딸을 밀어달라고 했다가 실패하자, 이번엔 율리아를 꼬신다.. 율리아에게 드라이브를 가자면서 꾀더니, 졸업 공연에서 오로라 역할을 거절하면 자기가 두둑하게 돈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카리나는 오로라 역할 안 해도 그만인 것 같은데.. 아무튼 율리아는 모욕감을 느끼고 기차를 타고 돌아간다.

 

기차에서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휴양지에서 알게 된 남자애가 자기가 쓰던 선글라스를 씌워주곤 자리를 뜬다. 율리아는 그 남자애를 따라가서는 연애를 한다. 그 애 집에서 며칠씩 지낸 듯? 그러다.. 졸업 공연 드레스 리허설에 늦고 말지.. 감히 리허설에 지각이라니, 다른 교사는 모욕죄로 삼아 주역 퇴출을 주장하지만, 갈리나의 고집으로 겨우 퇴출을 면한다.

 

명절 때인지.. 율리아는 아마도 처음으로 본가를 찾았는데, 가난에 쩌들어 지내는 동생들과 엄마를 보니 속상하다. 엄마가 일하는 집에서 그 집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챙겨와 가족의 식사를 차린 걸 보고 충격을 먹는다. 율리아를 오랜만에 보곤 "널 위해 스프를 끓였다며" 무척 반가워하던 엄마가, 율리아가 한 "동생들한텐 먹다 남긴 음식 보여주지 말라"는 식의 발언에 발끈하며 집 버리고 제 갈 길 간 나쁜 딸이라며 비난을 한다. 니가 모스크바에서 잘 나가면 뭐 하냐고 다 소용 없다고.

 

진짜 스포일러. 율리아는 졸업 공연에 가족들을 초대하려던 계획을 무산시킨다. 서둘러 모스크바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엄마를 원망하는 큰 동생한테는 "그래도 엄마에게 잘 해주라"고만 말한다.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는 동생이 조금 안타까울 뿐.. 모스크바에 돌아온 율리아는 이브닝 드레스를 차려 입은 카리나에게 무대 의상을 입으라고 한다. 자긴 오로라를 안 출 거라고, 그렇게 무대를 떠난다. 그리고 두 교사는 관객석에서 주역이 바뀐 광경을 보게 된다.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상황...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주역을 바꿔치기해 ㅎㅎ) 카리나가 등장하자 놀라는 교사들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카리나 엄마. 율리아는 은행에 가서 지폐다발을 건네며 돈을 부친다. 그리고 옥상을 찾는다.

 

옥상에는 전설이 있다. 갈리나 선생님이 소싯적에 이 옥상에서 그랑 쥬떼를 뛰어서 (차도 건너) 옆 건물 옥상으로 건너간 적이 있다는 전설. 한참 전에, 율리아와 친구들은 이곳을 찾아 진짜 뛸 수 있을까? 꺄르르거리며 살펴보지만, 분명 그 소문은 거짓말일 거라는 결론을 내린 적 있다. 율리아는 거의 죽을 결심을 하고 뛰기로 했을 것이다. 물론, 주인공이니까 안 죽었다. 진짜로 뛰어서 그 먼 거리를 건너 갔다.. ㅜㅜ '헐 내가 진짜 뛰었다고?' 당황한 얼굴..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발레 연습실에 갈리나 선생님이 앉아 있다. 다음으로 도착한 교사가 기분 좋게 인사를 건네는데 갈리나는 답이 없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 갈리나..

 

율리아는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하지만, 조력자 갈리나가 없어서인지, 본인이 춤 출 의욕을 잃어서인지 군무에만 머물러 있다. 반면 카리나는 잘 나가는 주역이다. 여기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앙투안 뒤발이라는 해외 스타 무용수 겸 예술감독이다;;(이것도 예산 문제겠지.. 일타쌍피ㅋㅋ) 꼬냑으로 병 나발 불고 있는 율리아를 발견한 앙투안. 둘은 거리로 나가 대화를 나눈다. 율리아는 러시아어를 잘 못 알아듣는 앙투안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무튼 앙투안은 카리나와 <백조의 호수> 주역 무대를 앞두고 있다. 군무를 맡은 율리아는 반항을 하다가 연습실에서 쫓겨난다..

 

율리아가 무대에 서기 전, 갈리나 선생님이 선물로 준 귀걸이를 착용하는 장면. 엄청난 값이 나가는 귀한 물건이며, 갈리나 자신이 무대에 설 때 착용했던 거라며, 너도 볼쇼이 무대에 설 때 이 귀걸이를 하라고 하셨다.

진짜 진짜 스포일러. 그럼에도 앙투안은 율리아에게 오데뜨 백업을 맡긴다. 무대 리허설 때, 율리아는 카리나 뒤에서 똑같은 춤을 춰야 한다. 카리나는 이 사실이 못마땅한지 율리아에게 시비를 건다. 너 앙투완이랑 잤냐면서 비아냥거리자, 율리아가 너 앙투안 좋아해서 질투라도 하는 거냐며 장난스럽게 받아친다. 그러자 카리나는 율리아가 짝사랑했지만 자신을 좋아한 남자애 이야기까지 거들먹거리며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낸다. 자신이 늘 아카데미에서도 최고였고 졸업공연 주역도 자신이 췄다고도. 율리아도 빡쳐서, 카리나 엄마와의 거래에 대해 고백한다.

 

카리나는 충격을 먹었는지 잠수를 탄다. 극장주(아마도)는 공연을 취소하겠다 하지만, 앙투안은 율리아에게 주역을 맡긴다. 그렇게 무대에 서는 율리아. 영화는 이렇게 끝난다..

 

영화 구성도 조금 이상하고 꽤 싱거운 내용이지만,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다룬 발레 이야기가 온갖 암투와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가득했던 걸 고려하면, 비교적으로 거부감 없이 편하게 눈높이 맞춰서 볼 수 있는 영화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발레 드라마도 얼마나 출연자들을 벗겨대고 가십거리를 꾸며대는지.. 흥미보다 피로도가 더 쌓이는 이야기다. 몇 년 전에 근친상간 다룬 발레 미드도 그렇고.. 유명한 영화 <블랙스완>도 그렇고. 발레에 관심 가지는 작가들은 온통 이런 주제밖에 생각 못하나 싶다니까.

 

아무튼 친구들이 서로 응원하고 애정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마지막에 주역 데뷔를 앞둔 율리아가 긴장을 하고 있자, 또 다른 절친한 친구 타냐가 율리아에게 해준 말이 인상적이었다. 네가 지금 이 무대를 한다고 해서 앞길이 보장된 게 아니라고, 다시 군무로 돌아가서 똑같이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그냥 태연히 나가서 추라고! 가슴이 너무 커서 무용수 일을 포기하고 의상실에서 일하고 있는 타냐의 말..ㅜㅜ

 

갈리나 선생님의 차갑지만 따뜻한 정도 정말 좋았다. 기억을 잃어가는 설정과 아끼던 제자의 무대를 보지 못한 허망한 죽음이 안타까웠고. 누굴 주역으로 세우냐는 문제로, 동료 교사에게 악담을 들은 장면도 안타까웠고.

 

 

번역이 약간 엉성한 게 아쉽다. 같은 사람이 연속으로 말하는 대사인데, 다른 인물이 말한 것처럼 줄표 처리하거나;; 한 걸 봐선, 영화 안 보면서 한 것 같다. ㅎㅎㅎㅎㅎ "파드되가 뭔데? 첫날밤이잖니." 이 대사는 진짜.. 이런 의미로 말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래도 좋은 영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0^

 

상영회는 모레까지 하는데, 내일은 <스테이션 7> 모레는 <아이스>를 상영한다. 아래 링크에 들어가서 미리 신청하면, 연락처로 영화 상영 링크가 발송된다. 유튜브가 아니라 비메오에서 상영. 실시간 스트리밍 아니고, 이미 올라와 있는 영상을 편하게 보는 방식. 저녁 7시부터 자정 직전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www.bfic.kr/new/contents/d1.asp?pmode=view&num=1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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