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안 죽는 여자(Leyla Everlasting, 2020)

터키의 페미니즘 영화이자, 터키식 뮤지컬 영화다. 영화 대부분의 시점은 자신을 아담의 아들이라 믿는 '아뎀'. 아내 '레일라'가 있는 '아뎀'은 부부 상담 치료를 맡고 있는 젊은 여인 '네르기스'와 불륜 중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네그리스'는 아담의 첫 아내이자 인류의 첫 마녀인 릴리스인 것처럼 그려진다. 릴리스의 성경과 역사가 자신에게 씌운 오명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 동안, 시체 사이에 앉은 '네르기스'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튼, '아뎀'은 '레일라'와 헤어지고 전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사고사를 위장한 살인을 계획한다. 그런데 번번이 멀쩡하게 살아나는 '레일라'. 결국 살인 시도는 아홉 번이나 이어진다. 그때마다 기절을 하거나 나란히 죽음의 위기에 처한 '아뎀'은 새하얀 크로마키 배경에서 자신의 심정을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이거 반복될 때마다 진짜 짜증났다.

 

한두 번 보여줬음 됐지, 도대체 몇 번을 반복하는 거야?! 제목은 '레일라 에버레스팅'인데 영화는 온통 이 아저씨 원맨쇼다. 휴.. 진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남자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단으로 그렇게 무리수를 펼친 걸까. 터키 사람들은 이걸 보고 좋아하려나? 자기네 전통 춤과 노래니까? 아무튼 '레일라'의 정체는 엔딩에서 밝혀진다.

 

스포주의.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불멸의 '레일라'는 아담과 이브를 심판한 최초의 인간, 뱀의 하수인이다. 어쩌면 '네르기스'와 '레일라'는 같은 사람일 지도. 붉은 머리의 여인들.

 

고고학자인 '아뎀'이 값비싼 수집품을 둘러싸고 '수집가'와 암투를 벌이다가 서로를 죽이고 난 뒤. 총을 맞고 즉사한 듯 보인 '레일라'는 유일한 생존자인 '네그리스'와 독대하고, 그제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둘의 대화가 영화 말미에 10분가량 이어진다.

 

'레일라'가 진짜 태초의 릴리스였고, 아담과 함께 흙 속에서 태어났다. 아담이 가부장제를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둘의 관계는 달라졌다. '레일라'는 여자는 죽음에서조차 '피해 여성'이라고 지칭되며 '다.르.게' 읽힌다고 말한다. 남자 작가, 남자 조종사, 남자 의사라는 표현은 하지 않는데도 굳이 여성에게는 모든 명칭에서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고, 구역질이 났다고.

 

'레일라'는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설명한다. 불멸의 존재로, 연인이든 남편이든 함께한 사람이 죽으면 자신의 모습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고. 그러면서 남자에게 여자란 남자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온갖 남자를 만나며, 순종적인 아내 역할도 해봤지만 결국엔 대립하게 됐다고. 그러면서 이번엔 너랑 나랑 함께 다시 시작해보자고. 이번엔 이 둘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영화가 끝난다.

 

시체들 모습으로 시작해서, 다시 그 시체들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끝나는 영화. 초반에 나온 내레이션 일부가 후반에서 반복된다. 색감이 매우 다채롭고 뚜렷하다. 다양한 미술 수집품이 등장하고, 호화로운 인테리어 디자인과 소품들이 나오기에 보는 눈은 매우 즐겁다. '아뎀' 할아버지의 장기자랑을 계속 봐야 한다는 점이 매우 큰 단점이지만.

 

그나저나.. 터키 영화는 난생 처음 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