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병(La Enfermedad del Domingo, 2018)

스페인 영화인데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 지대에 있는 마을이 배경이다. 시작은 바르셀로나 대저택, 호화로운 만찬 파티를 준비하는 아나벨. 수십 명의 스태프를 고용해 철저하게 준비한다. 사교계 인사들이 모여서 떠드는 파티가 끝나고, 아나벨은 뒷정리를 하는 스태프를 마주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둘은 다른 공간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다. 스태프의 정체는 아나벨이 약 35~6년 전에 버린 딸 키아라. 키아라는 일부러 엄마를 만나기 위해 그곳을 찾은 것이다. 당연히 금전을 요구하러 왔을 것이라 생각하는 아나벨, 그리고 그의 부유한 남편. 사교계 유명인사가 된 아나벨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이 누설될까 둘은 노심초사하며 변호인까지 대동한다. 키아라의 요구는 의외다. 열흘 동안 자신과 함께 지내자는 것. 친권 관계를 청산하자는 제안에도 거침없이 바로 서명한다.

 

남편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그 스태프가 딸인지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 아나벨은 그냥 나와 같은 존재가 서 있었다고, 알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둘이 처음 독대했을 때 둘은 아무런 대사 없이 서로를 빤히 응시하기만 했다. 그리고 변호인을 대동한 자리에서, 남편은 만약 아나벨이 키아라의 제안을 거절하면 어쩔 것이냐 묻자, 키아라는 그럴 리가 없다고 대답한다. 엄마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아무튼 그렇게 둘의 휴가가 시작된다. 키아라는 또, 의외로 아나벨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시간을 함께 보내지도 않는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고, 키아라는 밤에 외출을 나가겠다고 말한다. 아나벨은 그러라 말한다. 결국 둘은 함께 마을의 파티에 간다. 갑자기지만 조금은 친해진 듯한 둘. 키아라는 자신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도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나벨은 자신이 여기 온 사실을 또 누가 아냐고 묻는다. 고작 던지는 질문이, 자신에게 숨긴 딸이 있다는 게 알려질까 걱정하는 질문이다. 마음이 잔뜩 상한 키아라는 동네 청년과 키스를 하며 춤을 추고 고주망태가 된다. 아나벨은 야외 파티장을 잠시 떠났다가 기다린다. 골목 어귀에서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취해선 엉켜 있는 둘을 떼어놓고 키아라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다.

 

스포주의. 키아라는 변기를 붙잡고 하염없이 구토를 한다. 자신은 곧 죽을 거란 이야기를 하고. 자신을 버리고 욕망을 향해 떠난 엄마를 원망하는 듯 창녀라 부른다. 그리고 대낮, 잠에서 깬 키아라. 방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문 앞에 아침 식사가 놓여있다. 음식을 보자마자 기쁜 얼굴로 우걱우걱 먹더니 갑자기 위가 쓰린지 배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계단 아래로 떨어졌는지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서랍을 뒤져 주사와 약을 찾는다. 불치병이라는 암시는 이미 키아라의 고향 마을에 도착한 직후 나왔다. 개 나타샤를 맡아준 동네 친구. 그는 키아라에게 회복 치료를 언급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차를 끓인 키아라. 그때 외출한 아나벨이 집에 돌아온다. 여차저차해서 결국 키아라가 곧 죽을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아나벨. 아나벨은 키아라 너가 원한다면 집에 돌아가지 않고 너와 계속 함께 있을게, 라고 말하지만. 키아라는 마지막으로 저녁이나 먹고 다음날 내가 일어나기 전에 떠나라 말한다. 이상하게도.. 산책도 혼자 나갔다 올 정도로 매우 건강해보이던 키아라는 단 며칠만에 폐인이 된다.. 아무튼 키아라는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는데, 이걸 들어주지 않으려면 당장 떠나라는 조건을 걸고. 그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키아라가 아나벨의 귀 가까이 자신의 고개를 갖다 대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정적이고도 웅장한 방식으로 표현될 뿐(맨 위에 첨부한 사진). 이윽고 아나벨은 가방을 싸서 집을 떠나고, 키아라는 슬퍼 한다. 아나벨이 향한 곳은 바르셀로나 대저택이 아닌, 파리. 키아라의 친부가 재혼하여 살고 있는 곳이다. 둘은 담담하게 대화를 한다. 친부 역시도 키아라와 며칠간 시간을 보냈고, 함께 있겠다 제안했지만, 저녁만 먹고 작별 인사 없이 떠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아나벨은 다시 키아라의 집으로 돌아온다. 키아라는 아나벨의 모습을 보고 안도하지만, 너무 지쳐버린 모습으로 땅바닥에 누워선 일어나질 않는다. 아나벨은 키아라를 탈 것에 싣고 호숫가로 간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다 벗고 키아라의 옷도 벗긴다. 아나벨은 키아라를 두 손에 안아 들고 물 속으로 들어간다. 키아라는 준비가 됐다고 말하고, 아나벨은 키아라를 물 속에 집어넣는다. 키아라의 마지막 요구는 안락사였던 모양이다. 아나벨은 쓸쓸한 눈빛으로 홀로 거리를 걸어 키아라가 혼자 살던 집으로 돌아오며 영화는 끝난다.

 

촬영지가 궁금해서 열심히 찾아봤는데, 아나벨이 살던 도시는 바르셀로나. 아나벨이 떠난 곳은 피레네 산맥에 있는 프라 드 몰로 라 프레스트라는 프랑스 남부 지역 마을이다.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주의 몬세니 마을에서도 찍었다는데, 아무래도 인물들이 다니던 숲과 호숫가, 산책길이 이곳에서 촬영된 게 아닌가 싶다. 마을 시내 풍경은 프라드몰로라프레스트에서 찍은 게 확실하고. 그렇다면 몬세니 마을에 꼭 가보고 싶다. 정말 아름답다.

 

시각적으로 서늘한 느낌이 참 좋았다. 우리나라 산세와는 다른 느낌의. 키아라가 내내 감정을 억누르다가, 처음으로 아나벨에게 화를 내며, 자기는 여덟 살 때부터 이 창문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고 울부짖는 장면도 좋았다. 뭘 집어던져서 결국 엄마 머리에 피를 보게 하자, 갑자기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것까지.. 이틀이나 숙취로 잠들어 놓고 일어나선 엄마가 3N년만에 차려준 밥상을 보고 아이처럼 기뻐하는 표정도.

 

아나벨에겐 딸이 둘 있는데, 서로를 모르고 자랐지만, 둘 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것도 묘한 설정이라 생각한다. 아나벨이 포토그래퍼는 아닐 텐데.

 

그럼에도 한국 영화였다면, 사실은 엄마가 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어쨌고 온갖 변명과 불행의 서사가 펼쳐치고 모녀가 행복한 추억을 나누는 회상 장면도 꼭 들어갔을 텐데, 그게 아니라, 모두가 저마다 고유의 삶을 담담하게 살고, 크게 미안해 하지 않는 분위기도 낯설었지만 참 평화롭고 좋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한 번쯤 찾아가거나,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지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일본 영화가 떠오른다. 엄마에게 버려진 자식이, 불치병에 걸렸나, 마지막으로 친엄마가 보고 싶어서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그 집 앞까지 가지만, 엄마가 끝내 보기를 거부하는 영화. 제목 뭐였지. 동양과 서양이 이렇게 다르다. 너무 미안해서 죄책감을 피하려고, 혹은 새롭게 꾸린 가정을 잃을까, 자신의 과거가 들킬까 두려워 만나기를 거부하는 실제 이야기가 참 많다. 사람 일은 참 복잡하고 알 수가 없어서, 해소되지 못할 갈등이 전 인류에 걸쳐 끝도 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런데 나였어도 솔직히 창창한 나이에 저 산골 마을에 짱박혀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면,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대학교도 마치고 싶고, 뭔가 더 큰 것을 이루고 싶을 테니까. 아나벨은 키아라를 떠나기 전, 화장을 했다고 한다. 급하게 준비를 하곤 화장품을 모두 남긴 채 집을 떠났다고. 아나벨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보여주지만, 아나벨도 어렸으니까..

 

아름다운 영상과 슬픈 사연, 절제된 표현력, 배우들의 연륜. 

 

그런데 일요일의 병은 무슨 뜻이지? 일요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