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 2020) #넷플릭스

1. 종교의 탈을 쓰고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과 그릇된 욕망을 쫓는 인간. 그들 사이에서 자라 악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한 청년의 마지막 몸부림. 결말만큼은 완벽하다. 장황한 인간상의 나열이 소설의 형태를 그대로 가져온 듯하다. 가끔은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끝에 가서는 지극히 소설적인 전개가 오히려 다행이라 느꼈다. 소설 원작의 짜임새가 아무래도 영화보다는 더 대단할 것 같다. 소설을 읽고 싶게 만드는 영화.

 

2. 9월 16일에 개봉한 넷플릭스 신작. 조연으로 출연한 로버트 패틴슨 빼고는 아는 배우가 없다. 주인공 역을 맡은 톰 홀랜드는 스파이더맨으로 유명한가 본데.. 처음 봐서 미안하다.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에서 이안의 목소리를 연기했다고 한다. 이제 알았다. 그리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출신이라니 탄탄한 출발이 아닐 수가.

 

3. 초반에는 인물이 누가 누군지 너무 헷갈리고, 각각의 상황 설명이 장황한 데다 생뚱맞아 보여 한참을 헤맸다. 결국 주인공은 아빈 러셀. 이 아이가 장성하기까지는 45분 정도가 걸린다. 인트로가 좀 많이 길다. 인트로가 왜 이렇게 길었는지에 관한 의문은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풀린다. 영화는 1957년, 노컴스티프라는 마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혈연 관계다. 무지 혹은 욕망에 의한 악행에 의해서. 그런데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18세기 미국을 상상하고 있었다. 아무리 인간이 무지해도 저런 일을 벌이는 게 말이 되냐?

 

4. 넷플릭스에 있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설명은 최악이다. '그의 헌신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저 일어날 일이었을까.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 싶은 한 남자의 주변에 악한 자들이 들러붙는다. 도망갈 곳도 없는 작고 외딴 마을에서.' 아무런 정보도 기대감도 감동도 주지 못하는 어설픈 설명..

 

5. 아빈 러셀에겐 부모가 있었다. 노컴스티프의 어느 언덕 위쪽에서 아빠 윌러드, 엄마 샬럿과 함께 9년째 살고 있다. 아마 아빈은 여기서 태어났겠지?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여전히 외지인으로 여겨 차별을 가한다. 윌러드는 숲속에 쓰러진 나무 위에 십자가를 세웠다. 가족만을 위한 작은 교회를 만든 것이다. 그의 신앙은 독실하다. 윌러드의 기도 부분을 설명하다 갑자기 태평양 전쟁 당시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일본군에게 몰살된 어느 부대의 잔해를 발견했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료가 십자가에 예수처럼 못박혀 있다. 그에게 총을 겨눠 안락사를 시켜준다(?). 전쟁 영화인가? 착각하자마자 윌러드가 제대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오하이오에서 내려 어느 식당에 들른다. 이때 갑자기 나른하고 평화로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다시 봐도 너무 갑작스러운 선곡이다. 아무튼 윌러드가 바에서 서성이니 어떤 남자가 군복 입은 그 모습을 보고 자리를 양보한다. 그 남자는 사라지지 않는 악마 중 한 명, 칼이 된다. 윌러드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샬럿을 만난다. 그는 식당에서 쫓겨난 부랑자를 돕는 다정한 샬럿을 정말 사랑한다.

 

수백 킬로 건너, 윌러드의 고향. 윌러드의 엄마는 살아 돌아온 윌러드를 동네의 딱한 처녀 헬렌과 맺어주려 한다. 예배를 하러 갔는데, 새로 온 목사인지.. 목사 지망생인지 하는 로이가 광적으로 내뱉는 소리에 헬렌이 반해버린다. 운명을 시험해 보려다 불구가 된 로이의 사촌 시어도어는 인트로 속 작은 비극의 복선이다. 로이의 설교가 너무 긴 데다 자신의 얼굴 위에 거미를 쏟아붓는 장면이 실로 불길해서, 이번에는 이 영화가 종교 영화인가? 의심해 본다. 헬렌과 로이는 부부의 연을 맺었나 보다. 아기를 낳는다. 리노라라는 여자 아이다. 

 

윌러드는 다시 그 동네로 돌아와 샬럿과 재회한다. 그리고 아들 아빈도 낳는다. 약 9년 뒤에 샬럿이 암에 걸렸다. 의사조차 가망이 없다 말하자, 윌러드는 아들 아빈의 소중한 강아지를 죽여 신에게 제물로 바친다. 제발 샬럿을 데려가지 말라고, 대신 이 소중한 강아지 잭을 취하시라고. 십자가에 동료가 못박혀 있었던 것처럼, 윌러드는 잭의 시체를 십자가에 박는다. 어린 아빈은 아비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망한다. 아빈이 원망을 하건 말건 신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샬럿을 땅 속에 묻은 날 밤, 윌러드는 숲속 십자가 앞에서 목숨을 끊는다. 엄마를 땅 속에 묻은 것처럼 잭에게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뤄주려고 한밤 중에 몰래 교회를 찾은 아빈은 윌러드를 발견한다. 그리고 아빈은 할머니댁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남자 형제, 그리고 아빈보다 몇 살 어린 리노라가 살고 있다.

 

아빈은 아비가 적당한 때를 노려 악인들을 폭력으로 손봐줘야 한다는 가르침을 기억한다.

 

다시 리노라가 갓난아이던 시절로 돌아가자. 로이는 미쳤기 때문에 2주 동안 벽장 속에 들어가 주님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거미에게 물린 게 쪽팔려서 숨어지낸 거면서. 물린 데가 낫자마자 로이는 헬렌과 바람을 쐬러 나간다. 아기는 착한 이웃 할머니(윌러드의 엄마)에게 맡기고. 불구인 시어도어는 차 안에 두고, 산책을 하다가 로이는 헬렌의 목을 찌른다. 미친 종교적 믿음 때문이다. 자신이 헬렌을 부활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1950년대에는 과학이 없었냐;; 왜 이래 정말;; 하긴 요즘이랑 다를 게 없네. 당연히 헬렌은 살아남지 못한다. 로이는 결국 헬렌을 숲 속에 암매장하고 자리를 뜬다. 쳐울면서.. 밤새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로이는 도대체 왜 히치하이킹을 했는지.. 부부의 차 뒷좌석에 앉아 있다. 졸다 보니 남자가 로이를 깨운다. 멋진 걸 보여주겠다고, 일어나라고. 아름다운 호수 앞에 운전하던 여인이 헐벗은 채 앉아있다. 남자는 사진을 찍을 테니, 자신의 마누라와 관계를 맺으라 한다. 로이는 미쳤긴 해도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지 털썩 주저앉는다. 애초에 그를 죽일 작정이었던 남자는 로이가 딸의 이름을 들려주자마자 그를 죽여버린다. 그 남자가 앞서 동네 바에서 윌러드에게 자리를 양보해준 칼이다.

 

사실 영화는 아빈의 부모 이야기와 리노라의 부모 이야기를 시공간을 교차해가며 어떤 장면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다. 그 편집이 그닥 효과적이지는 못하다. 엄청나게 헷갈린다. 인트로가 사실은 이야기의 절반이나 다름없다. 조상 없는 민족은 없으니.. 다시 제대로 이해하고자 열심히 쓰긴 했는데, 내 열정보다는.. 인트로 부분 이야기가 워낙 디테일해서 길어진 탓이 크다. 인트로만으로도 너무 충격적이지만 인트로라서 스포라 할 순 없다.

 

 

6. 소설 원작자 도널드 레이 폴락이 영화의 내레이션을 직접 맡았다고 한다. 내레이션이 전지적 작가 시점인 건 뻔했지만, 현실 원작자가 더빙을 맡은 거라니.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데, 나이를 생각하면 엄청 늦은 데뷔다. 쉰살 때까지 작품 속에도 등장하는 '미드 제지 공장'에서 인부, 트럭 운전수로 일했다고 한다. 미쳤다. 1954년생이니까 첫 장편소설 소설을 출간한 2011년에는 만 57세였던 거다. 대단하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7. 현재 기준 이 영화는 넷플릭스 한국 순위에서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나도 안 봤지만 유튜브에 해설 영상이 꽤 있는 걸 보니, 한국인 구미에 잘 맞나보다.

 

8. 윌러드 역할 맡은 배우가 너무 섹시해. 빌 스카르스고르드라는 스웨덴 배우다. 공포 영화 <그것>의 '그것'을 맡은 일이 가장 유명한가보다.

 

9. 중반부 내용 포함. 로버트 패틴슨은 아빈과 리노라가 사는 마을에 새로 부임해온 목사다. 영화 중후반부의 비극을 초래하는 악인이다. 비열하고 탐욕적인 연기를 훌륭하게 해낸다. 그의 연기 중 최고인 것 같다. 첫 예배 때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요리를 해서 목사를 환영한다. 아빈의 할머니는 동네에서 요리 솜씨로는 제일 가는 인물. 재력이 없을 뿐.. 어쩔 수 없이 닭간을 선택한다. 닭간을 튀겨서 소스에 곁들이는 요리를 했다. 목사는 초라한 접시에 담긴 닭간 요리를 주제로 설교에 나선다. 가난한 자를 위하는 척하면서 아빈의 할머니를 모욕한다. 아빈은 저 새끼가 할머니 요리 혼자 먹고 싶어서 지랄하는 거라며 할머니를 위로한다.

 

아빈은 하루 날 잡고 리노라를 괴롭히는 일진 삼총사를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리노라를 교회 앞 헬렌 묘지에 데려다주고 오늘은 함께 기도할 수 없다고 이따가 데려오라고 한다. 아빈이 복수극을 벌이는 동안, 비가 쏟아지고 리노라는 교회 건물 앞으로 뛰어간다. 리노라를 지켜보던 음탕한 목사는 리노라를 으슥한 숲속으로 데려가 주님 앞에 너의 모습을 모두 드러내라고 한다. 누구보다 독실하고 외로운 리노라는 목사의 말을 믿는 듯하다. 데리러 온 아빈에게는 앞으로 엄마 묘지에 혼자 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몇개월 뒤에는 임신을 하지.. 버림을 받지.. 아이를 떼려고 목을 매지만 그러다 자기가 죽을 거라 생각은 못하지...너무나도 자주 반복된 비극이다. 아빈은 리노라의 장례식장이 끝나고서야 리노라가 임신했었고 목사가 추악한 짓을 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복수를 시작한다. 아빠 윌러드가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서 삼촌에게 선물한 권총으로. 이제 영화 후반부다.

그 와중에 리노라의 아비를 죽인 부부는 꾸준히 연쇄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카메라로 열심히 기록을 남겨 가면서. 칼은 아내 샌디를 이용해 변태 짓과 살인을 저지르는 듯하지만, 샌디의 양심이 칼에 비해 아직 남아있을 뿐, 샌디도 그의 행위를 즐긴 게 분명하다. 사진을 보면서 추억에 빠진 듯 미소짓고.. 열심히 미끼 역할을 하고.. 결국엔 질려서 떠나려 결심하지만. 샌디에겐 오빠가 있다. 보데커 보안관이다. 아빈의 아빠가 죽었을 때 시신을 거둬준 보안관. 샌디가 매춘을 한다는 소문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엉망이 될까 노심초사하다. 그러다 결국은 여동생과 여동생의 남편이 시체로 발견된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아, 이건 스포구나..

 

10. 헬렌 역을 맡은 미아 바시코프스카도 사실은 구면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이고, <제인 에어>의 제인 에어, 박찬욱 <스토커>의 인디아다. 인상이 너무 달라서 못 알아봤다.

 

11. 그 일몰은 실로 아름다웠다. 영화에 등장하는 풍경이 대체로 아름다웠다. 미국의 시골 풍경..

 

12. 아무리 생각해도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가 가장 강렬했다. 인생 연기.. 톰 홀랜드 연기도 물론 훌륭했다. 불쌍해, 아빈. 부디 아빈이 평온을 찾았길 바란다.

 

13. 이 영화를 조금 더 낫게 만들려면 어디를 손봐야 할까. 우선은 지나친 인트로. 엄청난 정리가 필요하다. 보안관의 이야기도 좀 축약할 필요가 있다. 그의 정치적 야욕은 그렇게까지 질질 끌면서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아니다, 모든 인물이 다 적절하게 살도록 그냥 드라마로 만들었어야 했을까? 근데 뭐 이대로도 그렇게 최악은 아니다. 아쉬운 점들이 명백하게 보인다는 게 문제지.

 

14. 아빈의 아역을 맡은 배우도 훌륭하다. 유약한 그 어린이의 모습..

 

15. 음악은 별로 임팩트가 없다.

 

16. 원작자 아저씨의 인생 스토리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