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디 (The Eddy) - #넷플릭스 명작

플랫폼 넷플릭스 (오리지널)

관람일 2020년 5월 27~28일

 

80년대생 영화감독 중에 데이미언 셔젤처럼 재즈에 미친 사람이 또 있을까? <위플래쉬> <라라랜드>를 만든 그는 내놓는 작품마다 대박을 쳤고 재즈에 대한 사랑을 호소했다. 그의 첫 드라마 진출작 <디 에디>는 그다우면서도, 꽤 결이 다른 작품이다.

우선 <위플래쉬>는 음악광의 이야기다. 태도가 사뭇 진지했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과 연습 과정을 스릴러로 승화하면서 음알못 관객들까지 푹 빠져들게 했다. 데이미언 셔젤의 자전적 스토리를 담고 있어 더 매혹적이었는지도. <라라랜드>는 전 세계가 열광한 로맨틱 뮤지컬. 연인이 처음 만나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다 자의도 타의도 아닌 이유로 평범하게 헤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흥겹거나 애잔한 음악과 춤이 좋은 양념이 되어, 요즘 뮤지컬 영화로는 드물게 성공을 거뒀다. 영화 관람에 잔뼈 굵은 누군가는 이미 수십 년 전 헐리우드에서 지겹도록 반복된 클리셰를 오랜만에 다시 모은 것에 불과하다 비평했다.

<디 에디>는 준비 과정부터 다르다. <원더>가 대표작인(내가 본 작품이 그것뿐이라..) 각본가 잭 쏜이 기획하고 대본을 썼다. 프랑스계 미국인이 데이미언 셔젤이 연출을 맡은 에피소드는 10개 중 처음 2개뿐. 3-4편은 프랑스 출신 우다 베냐미나Houda Benyamina, 5-6편은 모로코 출신 라일라 마락쉬Laïla Marrakchi, 7-8편은 미국 출신 앨런 파울Alan Poul이 사이 좋게 나눠 맡았다. 음악 드라마니 음악 프로듀서 언급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1995년 앨러니스 모르셋의 데뷔 앨범 <Jagged Little Pill>을 프로듀싱하며 그래미와 평단을 석권한 글렌 발라드가 작곡과 음악 프로듀싱을 맡았다. 마이클 잭슨은 물론 유명 스타와 내로라하는 히트곡을 여럿 작업한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히트곡과 협업한 뮤지션을 대자면 한도 끝도 없는 랜디 커버Randy Kerber가 동등하게 음악 제작에 참여했다. 랜디는 <라라랜드>에서 라이언 고슬링의 실제 연주를 맡기도 했다.

아무튼 넷플릭스는 데이미언 셔젤이란 이름을 내세워 <디 에디>를 홍보하고 있지만, 그의 전작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단 말이다. <디 에디>는 침울하고 지루할 정도로 잔잔하다. 근사한 재즈 음악이 간간히 침묵과 공백을 메우지만 취향이 안 맞는다면 그게 오히려 감상에 독이 될 수도 있겠다. 물론 서론만 이렇게 길게 쓴 나는 재즈도 좋아하고 지루하지만 섬세한 감정선도 좋아하기에, <디 에디>에 완전히 홀려버렸다.

프랑스 파리가 배경이지만 로맨틱한 구석이라곤 없다.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도 잘 안 갈 것 같은 음침한 골목이 배경이다. 어딘가 쓰러져 갈 것 같은 건물에, 한때 이름을 날렸던 미국인 재즈 피아니스트 엘리엇이 친구 파리드와 함께 운영하는 재즈 클럽이 있다. 엘리엇은 아들을 잃고 파리로 건너왔다. 아들을 잃은 뒤로는 더 이상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다. 대신 재즈 밴드를 이끌며 곡을 쓴다. 그의 관심사는 음악밖에 없다. 클럽의 실질적인 운영에 얼마만큼의 수고가 들며 얼마나 적자가 쌓였는지 고민하는 일은 오로지 파리드의 몫이다. 그러다 어느 날 파리드가 살해당한다. 엘리엇은 경찰의 의심을 산다. 동생의 부재와 새아버지의 등장에 적응하지 못한 딸 줄리가 마침 파리로 온다. 엘리엇은 클럽을 다시 세우려 애쓰지만, 상황은 연일 나빠진다. 괴로울 대로 괴로운 줄리는 방황만이 삶의 목표인양 있는 힘껏 사고를 친다. 서로가 필요하지만 서로를 밀어내는 이 못난 부녀가 주인공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엘리엇, 두 번째 에피소드는 줄리를 중심으로 흐른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파리드의 미망인인 아미라가 중심이다. 아미라는 시체 닦는 일을 한다. 밤에 출근하고 낮에 잠을 잔다. 파리드가 전재산을 클럽에 쏟아부어 남긴 돈도 없다. 멘탈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지만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엄격하고 강인한 엄마가 된다. 네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밴드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주드. 전 여자친구 그리고 그의 새 남자친구와 하루를 보낸다.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재즈 장르. 그럼에도 재즈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주드는 전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는 보컬리스트 마야가 나온다. 마야는 엘리엇과 사랑하는 사이지만, 둘의 관계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 엘리엇은 여전히 마야에게 구애하지만 마야는 차갑기만 하다. 폴란드 출신의 마야에게는 골칫덩이 엄마까지 찾아온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는 줄리가 열렬히 들이대다 실패한 아랍계 소년 심을 비춘다. 할머니, 동생과 함께 사는 심은 낮에는 샌드위치를 팔고 밤에는 재즈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밴드를 한다. 줄리와 심은 서로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심은 정서가 불안한 줄리가 부담스럽다.

일곱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갑자기 사라져 버린 드럼 연주자 카타리나. 우크라이나 출신의 카타리나는 재즈 클럽에서 일어난 악재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인물. 카타리나의 끔찍하게 싫은 아비가 쓰러졌고 자매와 번갈아 가며 노인네를 보살펴야 한다. 이들의 속내와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안 엘리엇은 끊임없이 고충을 마주하고 고된 결정의 순간을 감내해야 한다. 파리드를 죽음으로 몬 범죄 조직이 점점 정체를 드러내고 파리드를 죽였을 법한 자는 클럽 앞에서 피투성이 주검으로 발견된다. 마지막 에피소드 이름은 완전체인 ‘디 에디’다. 모두가 다시 모일 수는 있을까. 악몽 끝에 더 끔찍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는 악몽은 과연 끝이나 날까. 엘리엇의 마지막 선택은 묘한 기운을 남긴다. 시즌2를 예고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주요 인물은 프랑스에서도 미국에서도 비주류 인종에 속한다. 아프리카계(흑인)와 아랍계, 동유럽 출신 이민자. (엘리엇이 음반 계약을 희망하는 음반 프로듀서만이 프랑스 정통 백인이다.) 기구한 사연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덕분에 어두울지언정 이야기는 다채롭고 입체적이다. 또 프랑스 어느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파리의 모스크를 실컷 감상할 수도 있다. 아랍계 인물이 어떤 옷을 입고 모스크를 찾아 기도를 하는지 보여준다. 참 한심하게도, 그들의 신앙 활동이, 삶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모스크에 들어가 기도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여주냐 마냐의 차이가 이렇게 다르다. 감독 중 하나가 아랍계이기에 가능했던 연출일지도. 그동안 수많은 넷플릭스 쇼에서 아랍계=예비 테러범으로만 그려진 게 얼마나 원통했을까.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음악의 순수성과 범죄의 세계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의 옹졸한 안목을 넓히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모두 사랑을 갈구한다. 엘리엇과 줄리는 이미 사랑하고 사랑해야 마땅한 부녀지간이지만, 이들의 표현은 늘 엇갈리고 꼬인다. 엘리엇은 아들과 연인, 친구를 차례대로 잃고는, 밴드까지 잃을 수 없다며 만전을 기하지만 정작 옆에 있는 줄리를 소홀히 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비참함을 잊고 아빠의 관심을 얻고자 망나니처럼 날뛰던 줄리는, 윽박지르는 아빠에게 응징하듯 반항을 멈추지 않는다. 관객의 눈에는 둘이 서로를 아끼는 게 뻔한데, 둘은 서로의 진심을 의심하고 왜곡한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모습이 마냥 안타깝다. 마침내 엘리엇은 줄리를 다시 데려가려는 전처에게 자신이 얼마나 줄리를 아끼는지 설토한다. 줄리는 그제서야 아빠의 말이 진심이냐 괜히 되물으며 언 마음을 녹인다. 관계라는 게 참 어렵고도 단순하다. 엘리엇과 마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둘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연인 사이인지 친구 사이인지 부녀지간인지는 의미 없다. 서로를 아낀다면 진심 앞에 괴로울 이 없고,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타자를 보면 그 진리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실제 삶에는 쉽게 적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디 에디>는 상처와 치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줄리 역할은 어맨들라 스텐버그가 맡았다. 소름끼치게 예쁜 사람. <더 헤이트 유 기브> 역시 꼭 봐야 할 어맨들라의 대표작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같은 일은 미국에서 수백 번 넘게 반복됐는데, 2018년 개봉된 이 영화도 비슷한 사건이 주제다. 이 영화는 다음에 다시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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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디 | Netflix 공식 사이트

 

 

2020-06-10 1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