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딩 시즌 1·2 #왓챠 #명작 #짐캐리 #미셸공드리

마음 따뜻한 아저씨가 상실에 대처하며 방황하는 이야기.

 

2018년 쇼타임에서 첫 공개된 미드. 지난 7월 말, 왓챠에서 독점 공개. 왓챠에서는 짐 캐리와 미셸 공드리의 만남이라 홍보했지만, 제1 총괄 제작자는 데이브 홀슈타인(Dave Holstein)이고, 짐 캐리와 미셸 공드리를 비롯해 많은 이가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다. 매회 각본가와 연출가가 다르다.

 

그럼에도 미셸 공드리 특유의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셸 공드리의 전작으로 치면 <수면의 과학>과 <이터널 선샤인>을 합쳐 놓은 분위기. 사람의 마음 속, 저 끝에 있는 해묵은 감정을 쿡쿡 찌른다. 짐 캐리가 <이터널 선샤인>에선 정극 연기를 펼쳤는데, <키딩>에서는 미셸 공드리와 재회하면서 자신의 장기인 희극과 정극을 오가며 탁월한 연기력을 자유자재로 뽐낸다.

 

짐 캐리가 분한 피클 아저씨는 30년 넘게 방영된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이다. 피클 아저씨는 온갖 인형들과 함께 등장해 전 세계의 어린이를 위해 따뜻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나라로 치면 뚝딱이 아빠와 김영만 아저씨가 합쳐진 캐릭터가 롱런하다 못해 전지구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설정. 미국에서는 로저스 아저씨라는 인물이 1950년대부터 비슷한 역할로 활약했다고. 피클 아저씨는 피클 통 폭포 마을을 배경으로 한 세계관에서 여러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문제를 해결한다. 피클 아저씨가 낙하산이 달린 피클 통을 타고 폭포 아래로 내려가는 장면이 이 프로그램의 시그너처 시퀀스(?)다. 폭포가 배경인, 슬픈 이유는 후반부에 등장한다.

 

 

쇼타임에서 공개한 예고편

 

 

피클 아저씨의 본명은 제프 피키릴로.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다. 제프는 쌍둥이 아들 중 하나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아내와 별거 중이다. 그가 아름다운 저택을 뒤로 하고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은 주로 대학생들이 지내는 조금은 산만한 환경의 아파트. 틈 나면 집으로 전화를 걸어 죽은 아들 필이 남긴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다. 필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제프는 휴식 없이 방송 활동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방송 30주년을 맞아 책도 출간했다. 제프는 필을 잃은 이야기를 방송에서 털어놓고, 상실에 관한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한다. 우겨서 녹화도 강행하지만, 프로듀서의 극심한 반대로 이 녹화분은 방영되지 못한다. 지나치게 냉정해 보이는 프로듀서는 사실 제프의 아버지다. 그렇다, 그도 사랑하는 손자를 잃은 할아버지다.

 

제프뿐 아니라, 인생이 그렇듯, 모든 인물이 방황한다. 다른 쌍둥이 아들 윌은 아직 초등학생인데 벌써 대마초에 중독되고 반항을 일삼는다. 윌은 가족들이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필을 떠올리는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다. 서류상 아직 아내인 질은 간호사인데, 병원 동료인 피터와 연애한다. 제프는 질과 다시 잘 해보고 싶어 하지만, 무리하지 않는다. 옆집을 사 버리는 등 질을 졸졸 따라다니는 행위를 제외하면 대충 그렇다. 질은 교통사고가 일어났을 때 운전을 했다. 본인이 티를 내지 않지만, 제프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지만, 질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제프의 누나인 디어드러는 피클 아저씨 주변 인물을 창조한다. 인형 캐릭터를 손으로 직접 꿰매서 정성스레 만든다. 딸이 하나 있다. 딸이 채소를 안 먹어서 속을 썩이긴 하지만 꽤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딸이 들려준 이야기에 기겁을 한다. 딸이 목격한 것은 피아노 선생님이 아빠의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즐거워 하는 장면. 남편이 게이인 데다 바람을 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디어드러도 제프못지 않게 방황한다.

 

 

짐 캐리의 코멘터리 '짐 캐리가 들려주는 드라마' 

 

아무튼 이들 캐릭터를 주축으로 매회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거나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피클 아저씨는 늘 밝고 다정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끔은 꽤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하는데, 가만히 보고 듣다 보면 눈물이 절로 흐른다. 제프에게 일어나는 일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 그럼에도 따뜻하고 진실된 그의 마음은 늘 묵직한 공감과 감동을 자아낸다. 이 작품은 거대한 마술 쇼이기도, 인형극이기도, 희극을 가장한 비극이기도, 비극을 가장한 희극이기도 하다. 각본과 연출, 편집이 근사하게 어우러지며 삶을 통찰하는 명작. 제작진 포함, 많은 이들이 이 드라마를 다크 코미디로 분류하는데, 아마 다크 코미디 중에선 가장 밝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취향을 크게 타지 않을 듯하다. 아동이 봐도 교육적이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선정적인 장면이 등장해 '아, 이 작품은 어른을 위한 치유극이구나' 했다. 마음 깊은 곳이 허한 모든 이들이 <키딩>을 꼭 (여러 번) 봤으면 좋겠다. 제프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나 하나쯤 묵혀뒀을 상실감을 조금은 덜 수 있기를. 

 

최고의 에피소드는 시즌 2의 5화 '3101화'. <키딩>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이 작품의 애니메이터(?)들이 가장 공들였을 에피소드. 아리아나 그란데가 깜짝 등장한다(주요 인물과는 따로 찍어서 이어 붙인 것 같다).

 

 

넉 달 전쯤, 넷플릭스에서 <트루먼쇼>를 다시 봤다. 짐 캐리의 연기력과 영화의 통찰력과 메시지는 감탄을 자아낸다.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익살스러운 연기로 단순한 웃음을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늘 깊은 여운을 남기는 짐 캐리의 탁월한 능력. 그의 불우했던(과거형으로 남기고 싶다) 인생사를 알고 나면 그 능력이 더 애잔하고 그윽하게 느껴진다. 계속해서 그의 진심을 되새기던 차에 왓챠에서 <키딩>을 독점 공개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알고 보니 2년이나 지난 작품이란 사실엔, 이걸 왜 여지껏 몰랐을까, 원망스럽기도 하다.

 

 

제발, 꼭 보세요!

https://play.watcha.net/staffmades/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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