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2019)

처음 줄거리만 보곤, '이거 완전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100번은 다뤘을 뻔한 이야기네. 가볍게 보기 좋겠어.' 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모든 인물의 사연을 풀어버리고, 머지 않아 죽음의 진실을 밝혀버리네? 그 진실은 한 명에게 짐 지듯 몰빵을 하고.. 이 영화 어쩌려고 이러는 거지? 정말 한치 앞이 예상이 되지 않아서 궁금증 폭발!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예상과 미스터리 클리셰를 깨부수는 느낌. 재밌게 봤다.

 

다 보고 나서 알았지만, 탐정 아저씨는 007 시리즈로 유명해진 다니엘 크레이그, 집안의 문제아로 나오는 랜섬은 크리스 에반스였다. 아니 랜섬, 완전 매력 캐릭터다. 악역 이미지로 재수없게 등장했다가, 섹시한 매력을 감출 수가 없다가, 갑자기 주인공 편에 서면서 스윗함 발휘하고.. 또 다시 반전을 보이는. 크리스 에반스는 인스타그램에 이상한 사진 올려서 시끌벅적했던 일이랑 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했다는 것만 알았는데.. 이렇게 연기를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캡틴 아메리카도 물론 영화로 보긴 했을 텐데, 기억이 안 남.. 그리고 그걸 배우의 연기력을 가늠해볼 만한 진정한 연기라고 할 수 있냐고 ㅎㅎ) 다니엘 크레이그는 뒤로 갈수록 심한 남부 사투리를 흉내내는데.. 진짜 타국인인 내가 들어도 어이가 없다 무슨 맥락이여ㅎㅎㅎㅎ 영국 아저씨 뭐하세요.. 재밌게 찍었나봐..

 

줄거리는 이렇다. 미스터리 소설 거장 할런이 자신의 대저택 서재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목에 칼이 그인 채로. 경찰은 정황상 자살로 추정하지만, 익명의 누군가가 유명한 탐정을 고용해 심도 있는 수사가 시작된다. 탐정이 유명해서 경찰들이 신났음, 탐정 에스코트하면서 열심히 같이 다님. 거장에겐 세 명의 자식과 각각의 배우자와 손주들이 있다. 특히 자식들과 며느리가 수상한 상황. 저마다 서로를 지목하며 아버지의 생일 파티 때 아버지와 싸웠다고 한다.

 

탐정은 가족도 가족이지만, 할런의 개인 간병인이자 간호사 마르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마르타는 일단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하는 선천적인 병(ㅋㅋ;;)이 있는데, 수사관에게 그만큼 좋은 증인이 또 있을까. 할런의 손녀뻘이라 할런의 손녀와도 친한 마르타는 사실 할런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돈만 밝히고 자신을 끝없이 갈취하려 드는 가족보다 더 신뢰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르타가 할런의 죽음에 가장 밀접하게 개입한 인물이다! 할런의 생일 파티가 있던 날 밤에도, 마르타는 빨리 주사를 놓아드리곤 퇴근을 하고 싶지만 할런의 고집으로 여느 때처럼 오목(ㅋㅋㅋㅋㅋ)을 둔다. 할런은 자기가 질 것 같으니까 바둑판을 엎어버린다. 이 고약한 할아버지.. 그리고 약을 주사한다. 자녀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끊겠다고 통보한 할런은 소회를 풀어놓는다. 화기애애한 둘. 마르타는 힘드셨을 테니 선물로 모르핀을 조금 놔드리겠다며 약병 가방을 뒤진다. 그러다 갑자기 화들짝 놀래선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누가 약병을 바꿔치기 했는지, 이미 100을 투여한 병이 모르핀이었던 것이다. 3 정도만 놓는 게 적당한데, 100이면 치사량이다. 패닉에 빠진 마르타는 해독제를 찾지만 해독제는 온데 간데 없다.. 할런은 마르타의 설명을 듣곤 자신은 이제 죽는 수밖에 없다고 오히려 마르타를 납득시킨다. 마르타의 엄마는 사실 불법 체류자로, 마르타의 의료 과실이 밝혀지면 엄마도 추방될 것이고 가족이 다 흩어지게 된다. 이걸 모두 내다본 할런은 노련한 미스터리 소설가답게, 마르타에게 이 모든 일을 덮고 살아갈 수 있도록 확실하게 알리바이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마르타는 할런이 알려준 대로 알리바이를 만들지만, 이미 패닉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다. 수사관과의 개별 면담이 모두 끝난 뒤, 장례식에서도 마르타는 안절부절이다. 가족들은 여전히 서로를 탓하며 비난하기 바쁘다. 그리고 며칠 뒤, 변호인이 찾아와 유언장을 낭독한다. 할런은 죽기 일주일 전 유언장 내용을 변경했다. 그리고 유언장 내용은 가히 충격적. 모든 재산을 마르타에게만 주겠다는 내용이다. 마르타는 할런을 살해할 용의가 전혀 없는 사람에서, 유력한 사람으로 의심받게 되었다.

 

욕심 내다가 유산은 한푼도 없게 생긴 가족들의 비열한 시선..

분개한 피붙이들은 마르타에게 할런과 자기라도 한 거냐며 온갖 비난을 쏟아낸다. 누구보다 겁에 질리고 당황한 마르타는.. 탐정의 에스코트를 받아 자리를 뜨기로 한다. 지겨운 사람들.. 앞마당까지 따라나와서 못살게 군다. 그때 마르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랜섬. 망나니 손자인 랜섬은 자신의 차에 마르타를 태워 자리를 뜬다. 그리고 마르타의 편을 들어주겠다며 진실을 알려달라고 한다. 랜섬은 마르타의 이야기를 듣더니, 그 모든 것을 함께 지켜주겠다며 협력을 약속한다. 물론, 원래 자기 몫의 유산을 달라는 조건을 걸긴 했다. 이렇게 이야기는 새로운 판국으로 접어든다!

 

사실 죽음 뒤에 엄청 복잡하고 치밀한 진실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니고, 꽤 단순한 줄거리인데, 모든 것을 신선하게 꼬아놓은 덕에 가슴 졸이며 재미나게 볼 수 있다. 강추. 근데 진짜 복잡한 추리물이었으면, 애초에 오목이 아니라 바둑을 등장시켰을 거다 ㅎㅎ

 

할런은.. 자신이 너무 자식들에게 다 해준 탓에, 자식들이 스스로 성장하질 못한 것 같다며 자책을 한다. 두당 수백만 달러씩 썼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거야.. ㅜㅜ 그런데 부모가 너무 재능이 넘치거나 성공을 하면, 자식이 주눅들어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설이 있더라.. ㅎㅎ 자삭이 주눅 들 정도로 성공했다면 진짜 특이하게 희귀한 천운을 거머쥔 거고. 그 정도도 아닌데 그늘이 어쩌고 외친다면 보통의 경우는 복에 겨워서 하는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누린 게 얼마나 특권인지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확률이 높은 사람들..

 

마르타도 너무 예쁘고, 유일하게 마르타에게 다정한 손녀도 예쁘다. 얼마 전에 본 <찰리 바틀렛>에서도 봤던 배우.. 매력 어쩔 거야.

 

크리스 에반스.. 팔뚝이랑 어깨 어쩔 건데.. 등장할 때마다 시강...

광기 어린 음흉한 미소..ㅎㅎ

스웨터 터지겠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