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았다(Jusqu'à la garde, 2017) #프랑스영화 #왓챠 #가정폭력

영화는 차가운 건물 복도에서 두 사람이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걷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고서도 이 영화의 주요 인물은 한참 동안 스크린에 등장하거나 입을 열지 않는다. 입장한 판사의 진술서 낭독과 조정 진행을 통해 어느 부부가 양육권과 재산 분할에 대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아들 줄리앙은 진술서를 통해 아빠(앙투안)가 엄마(미리암)를 또 해치려 들까 봐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고, 남편은 두 아이가 아내에게 세뇌당한 거라 주장한다. 변호사의 상반된 주장이 오가고, 남편 측 변호사는 유난히 흥분하며 아비의 제 아들 볼 권리를 뺏을 수는 없다 말한다. 판사는 둘 중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며 판결을 미룬다. 관객은 판사의 중립적인 시선을 따라 가면서 영화의 시작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서서히 물들 듯 영화가 말하는 진실에 눈을 뜬다.

 

남편을 피해 멀쩡한 직장도 관두고 두 아이를 데리고 500km가 넘는 곳으로 도망치듯 떠나 온 미리암. 세 모자는 새 아파트를 보러 갔다가 변호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변호사의 말은 들리지 않지만 아이들의 불안한 태도와 표정으로 판사의 판결을 가늠할 수 있다. 시퀀스는 다시 미리암의 친정, 어느 주말로 이어진다. 줄리앙은 짐을 싸 놓았지만 공포에 떨며 침대에 엎드려 있고 미리암은 걱정스러운 몸짓을 표하고 있다. 집 앞에 도착한 앙투안은 줄리앙에게 사준 전화를 연신 울린다. 줄리앙은 전화를 절대 받지 않는다. 결국 미리암이 전화를 대신 받고 아이가 아프다 둘러대지만, 앙투안은 판결대로 나오지 않으면 신고하겠다 말한다. 엄마가 걱정된 줄리앙은 조금 참고 아빠를 접견하기로 결심한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조부모님 댁. 할머니 할아버지와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평범하게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 접견 일정 때는 누나의 생일 파티가 열리기 때문에 그곳에 가고 싶다고 말한 줄리앙. 다른 주말에 보면 안 되겠냐는 줄리앙의 물음에 앙투안은 대답 없이 TV만 응시한다. 줄리앙이 잠든 밤, 앙투안은 줄리앙의 가방을 뒤진다. 줄리앙의 공책 맨 앞 장에는 보호자인 두 부모의 인적 사항과 연락처가 적혀 있다. 앙투안의 정보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수정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여져 있다. 앙투안은 그보다는 공책에 적힌 미리암의 정보에 주목한다.

 

그리고 다음날, 앙투안은 줄리앙을 집에 데려다 주기 전 공책을 꺼내 보라 한다. 엄마의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한 속셈을 눈치 챈 줄리앙은, 공책에 적힌 엄마의 전화번호는 옛날 번호라 둘러대지만, 공포심에 못 이겨 공책을 꺼낸다. 앙투안은 미리암에게 전화를 걸고 다음 접견 일정을 미루고 싶다면 언제 줄리앙을 데려 갔다가 다시 데려다줄지를 직접 만나서 알려달라고, 그러면 줄리앙이 생일 파티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 말한다. 줄리앙은 아빠의 뜻대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아빠에게는 지금 외가에 엄마가 없다 거짓말한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아무 일 없는 척을 한다. 2주 뒤, 줄리앙은 바라던 누나의 생일 파티 대신 보고 싶지 않은 아빠를 보러 가기로 한다. 그리고 이 날 밤, 사건이 일어난다.

 

법이 가정 폭력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영화 속 현실은 관객이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줄리앙이 폭력적인 아빠 앞에서 벌벌 떨면서도 엄마를 위해 위태로운 거짓말을 이어 나가는 상황은 가정 폭력의 공포를 현실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어린 아이들은 사랑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어른도 감히 하지 못할 용감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 아이들이 커서 얼마나 큰 트라우마에 시달릴지를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판사 앞에서 온순한 척 굴던 앙투안이 줄리앙 앞에서, 심지어 자신의 부모 앞에서도 드러내는 폭력성은 가정 폭력범의 끔찍한 두 얼굴을 보여준다. 감독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가정 폭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길 바랐다고. 그래서인지 영화는 노골적으로 교훈을 설토하는 방식을 취하는 대신, 심리 묘사 위주로 사건을 전개한다. 

 

예고편인데 빠른 비트 위에 판사의 진술서 낭독을 얹은 사운드 효과가 인상적이다.

 

+) 줄리앙의 누나 조세핀 역시 가정 폭력의 피해자다. 중학교 때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 귀가했다는 이유로 앙투안에게 폭력을 당하고, 손목을 다친다. 당시 학교 양호실에서 받은 진단서가 영화 초반부에서 언급된다. 조세핀은 줄리앙처럼 앙투안을 혐오하고 두려워 하지만 이사를 오는 바람에 남자친구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조세핀은 문제의 사건이 있던 날,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노래를 부른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라는 곡. 도시에서의 좋은 삶을 버리고 왔지만, 인심 후한 주변의 노동자 덕분에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내용 같다. 도시에서의 좋은 삶을 떠나 왔지만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하는 조세핀의 심정을 상징하는 듯하다. 조세핀의 커버 버전이 꽤 황홀한데 클립이나 음원은 없다. 아래 더보기는 가사.

 

 

Left a good job in the city
Workin' for the man ev'ry night and day
And I never lost one minute of sleepin'
Worryin' 'bout the way things might have been

Big wheel keep on turnin'
Proud Mary keep on burnin'
Rollin', rollin', rollin' on the river

Cleaned a lot of plates in Memphis
Pumped a lot of pane down in New Orleans
But I never saw the good side of the city
'Til I hitched a ride on a river boat queen

Big wheel keep on turnin'
Proud Mary keep on burnin'
Rollin', rollin', rollin' on the river
Rollin', rollin', rollin' on the river

If you come down to the river
Bet you gonna find some people who live
You don't have to worry 'cause you have no money
People on the river are happy to give

Big wheel keep on turnin'
Proud Mary keep on burnin'
Rollin', rollin', rollin' on the river
Rollin', rollin', rollin' on the river

Rollin', rollin', rollin' on the river
Rollin', rollin', rollin' on the river

 

가정 폭력의 정도는 프랑스와 한국을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법의 보호망은 한국이 훨씬 허술하고 약하다. 선진국이기에 그들의 법이 우리보다는 더 정상적으로 작동하리라 기대하지만, 그마저도 영화에선 불충분함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모든 것이 비정상에 가깝다. (마침 얼마 전에 만난 지인은 자신의 주변인이 이혼한 경우 대부분이 가정 폭력 때문이라 말했다. 씁쓸한 현실..) 영화의 끝 부분에 이르면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저런 침착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자비에 르그랑 감독의 첫 장편 영화로, 2017년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 수상작이다. 원제(불제)는 '보호받을 때까지'를, 영제 <Custody>는 양육권, 보호 관리권을 뜻한다.

 

이 땅의 전국민이 꼭 한 번씩 시청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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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았다 -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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