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리(ディーリー, dele, 2018)

일본의 8부작 드라마 <디리>. 딜리트(delete)의 앞부분만 추린 제목. 두 남자가 의뢰인의 '삭제' 요청을 대행하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불법 촬영물을 삭제해주는 디지털 장의사 같은 직업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내용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의뢰인은 자신이 죽으면 이러이러한 디지털 유품을 삭제하거나 누군가에게 전해주세요, 라는 요청을 남긴다. 누군가가 죽어야만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라, 디바이스 미사용 시간이 채워지면 서버에서 알림이 오는 시스템. 진짜로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마시바(스다 마사키)가 직접 발로 뛰고 말로 묻고 다니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탐문을 펼친다.

 

이 업체의 실제 운영자는 사카가미 케이지(야마다 타카유키), 누나가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변호사 사무소를 운영 중이고, 연계된 일을 주섬주섬 받아서 디지털 관련 일을 하고 있다. 10대 때인가 불치병에 걸려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누나의 소개로 협업하게 된 마시바가 그의 다리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제각각 사연이 다르지만, 그런 거면 본인이 죽기 전에 삭제해도 됐지 않을까.. 싶은 정도의 사연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의뢰인은 자신의 사연을 숨기고 싶어서 의뢰한 것일 텐데, 결국엔 사생활을 파헤치는 꼴로 매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두 주인공만이 알고 마는 정도겠지만. 어차피 픽션이지만, 픽션 속 모토와 전개 방식이 늘 모순되는 셈이다. 그래서 재미가 없는 걸까. 아무튼 별로 재미가 없다. 사연들도 다 그냥 그렇다. 지금까지 일본 드라마계에서만 수십 번은 다뤘을 법한 뻔한 이야기. 그에 비해 너무 무게를 많이 잡으니까.... 폼만 가득 재는 모양새..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3회. 스포일러일 텐데, 수십 년 전에 학생 운동하다가 평생을 도망다니는 사람이 일본 사회에 존재한다는(실제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것이 도저히 상상이 안 가서 기억에 남았다.

 

+나도 스다 마사키의 매력을 정말 알고 싶다.. 이 드라마에서는 가뜩이나 더벅머리로 나와서.. ㅎㅎ.. 이케맨으로서 인기를 이해하는 데 더 방해가 됐다. 연기를 정말 열심히 하는 건 잘 알겠어!

+야마다 타카유키도 늘 너무 똥폼 잡는 것 같아서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쩜 예상 그대로의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