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 스팍스(Ruby Sparks, 2012)

자기 중심적이고 게으른 작가의 비열한 사랑 이야기. '루비' 역할을 맡은 조 카잔은 온갖 연기를 보여줄 수 있어서 신났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이가 바로 조 카잔이다.

 

천재 소리 들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이렇다 할 후속작을 내지 못한 작가 캘빈. 강아지 스카티와 함께 현재 퍼떼틱한 삶을 살고 있다.. 꿈 속에 나온 여인을 모티프로, 상상을 덧붙여 글을 썼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실제로 등장했다. 처음엔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 환각을 겪는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과 말도 하는 실제 사람이었다. 캘빈은 루비와 사랑에 빠지지만, 늘 그랬듯 자기중심적 세계로 한눈을 팔기 시작한다. 막상 루비가 캘빈이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하지 않자, 캘빈은 분개하며 타자기 앞에 앉는다. 루비가 이랬다 저랬다 타자기에 쓰면 루비는 그대로 행동하고 말하니까.

 

내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이 실제로 나타나 내 연인이 된다는 독특한 설정.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캘빈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진실. 스포일러. 자기 맘대로 여자친구를 조종할 수 있음에도 도무지 만족하지 못하는 캘빈은 결국 자기 파괴적 행보로 루비와의 관계를 단절한다. 그리곤 모든 것을 리셋시킨다. 특히 루비의 기억을. 캘빈은 루비에 관한 기억을 써서 책으로 낸다. 그리고 다시 성공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영화의 마지막은 캘빈에게 한 번 더 갱생할 기회를 주면서 끝난다.. 기억을 모두 잃은 루비와의 재회.

 

별로 감명받지 못했다.. 한심하고 매력없는 인간을 영화 내내 봐야 한다는 게 일단 짜증났고. 루비와 달콤한 사랑에 빠졌을 때도 아무 감흥 없었는데. 결국엔 그 인간이 자기 반성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도 않아서 더 짜증이 났고. 그냥 '이다지도 괴로운 나'에 취해서 방황하는 척만.. 얼렁뚱땅 매듭지어진 결말도 별로..

 

다들 자기 중심적으로 사니까, 그 반성적 태도에 눈을 뜬 이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