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존슨이 죽었습니다(Dick Johnson Is Dead, 2020) & 엔딩 노트(エンディングノート, 2011)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초반부를 보자마자, 2011년에 나온 일본 영화 <엔딩 노트>가 떠올랐다. 두 영화가 많은 부분에서 유사한데, 전자가 미국적으로 화려하고 거창해진 느낌. <엔딩 노트>는 이와이 슌지의 영화 제작부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던 감독이, 위암 말기인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며 그의 여생을 촬영한 영화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다큐멘터리 영화 촬영 스태프로 일한 주인공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뉴욕으로 모셔와 일상과 픽션을 촬영한 영화다. 두 영화 모두 딸이 직접 카메라를 잡고, 자신 가족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들려준다.

 

<엔딩 노트>의 아버지는 일본 버블 경제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샐러리맨, 현시점으로 따지면 꼰대다. '나 때는 말이야, 일본이라는 나라를 일궜다고! 요즘 젊은 애들은 말이야, 노오력을 안 한단 말이야' 식의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감독이 된 딸 스나다 마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 시절 모든 가부장이 그랬듯, 일을 핑계로 밖으로 나도느라 가정에 소홀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서운함을 토로한다. 가족을 그렇게 나 몰라라 내버려두고(그러면서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체면은 강요했겠지) 수십 년 동안 맘 고생을 시키더니, 은퇴한 뒤에야 함께 시간을 보내니 이제서야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암에 걸려 이제 곧 떠난다는 거냐고. (8년 전에 봤는데 어머니의 설움이 매우 생생하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의 '딕 존슨'은 다정하고 세심한 의사다. 환자들도 그를 참 좋아했고,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신실한 교인으로 살았다. 몇 년 전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는데, 이제는 본인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알츠하이머가 죽을 병은 아니지만, 기억이 소멸된다는 것은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딸은 어머니의 생전 모습을 많이 촬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아버지의 모습을 영화에 담기로 한다.

 

커스틴 존슨이 <엔딩 노트>를 봤으리라 확신한 부분은 영화 초반이다. 장례식 준비를 하는 부분. <엔딩 노트>에서 아버지 스나다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쭉 기록한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장례식을 계획하는 일. 원래 불교(?)였던 그는 자신의 마지막은 천주교식 장례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개종을 한다. 신부님과 상담도 한다. 딕 존슨 역시 자신의 장례식이 거행될 교회를 찾아 이런 저런 탐색을 한다. 딸이 준비한 관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아무튼 일단은 두 영화 모두 나를 펑펑 울게 했다.

 

커스틴이 이 영화에 활력과 위트를 더한 부분은 바로 고의로 위장한 아버지의 반복된 죽음이다. 제목부터가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잖아. 영화 초반, 딕 존슨은 길을 걷다 지상에서 떨어진 컴퓨터 본체를 머리에 맞고는 사망한다. 이 장면은 스턴트맨을 고용해 연출한 픽션이다. 딕은 커스틴의 연출로 영화에서 여러 번 죽는다. 그리고 죽음 뒤에는 천국에서의 행복한 삶이 펼쳐진다. 매우 화려한 장식과 조명, 안무, 연출로. (이것은 이들 가족이 믿는 안식교에서 기인하는데, 초반에 이 낯선 종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커스틴은 시애틀에 혼자 살고 있던 딕을 데리고 뉴욕으로 간다. 딕의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기 시작해, 예약을 중복으로 잡거나 약 처방을 여러 번 하는 등 사소하지만 중대한 업무 과실을 저지른 끝에, 은퇴를 했다.

 

엔딩 스포일러. 커스틴은 딕이 심장 마비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듯한 위급한 상황을 보여준다. 바로 후, 장례식 장면이 펼쳐진다. 딕의 환자였던 여성의 추모사. 힘들거나 무언가를 상실할 때마다 그는 가장 먼저 딕에게 연락했고, 딕은 곧 그에게 전화해 위로의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런데 딕의 알츠하이머 발병 소식을 듣고는 또 가까운 이를 잃는 상실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천국에서 환하게 웃는 딕의 모습이 이어진다. 그의 추모사가 끝나자, 딕의 절친한 친구의 추모사가 이어진다. 길게 쓴 추모사를 읽으며 그는 끝내 흐느끼며 운다. 그리고 딕이 생전에 부탁한, 딕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호른으로 연주해 달라는 요청을 들어준다. 그리고 이번엔 장례식을 문 한가운데 뚫린 마름모 구멍으로 지켜보는 딕과 커스틴의 모습이 나온다. 딕은 친구의 오열에 '쟤 이 장례식이 진짜라고 생각하나 봐'라며 황당해 한다. 이 장례식은 딕이 시애틀을 떠나기 전, 커스틴이 기획한 것이다. 딕의 지인을 불러모아서. 아마도 기억을 잃기 전 딕의 마지막 모습을 추모하기 위해서. 그리고 부녀는 딕 친구의 멜로디도 알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호른 연주에 웃음을 터트린다. 딕은 결혼식에서 신랑이 입장하듯, 문을 열고 교회 강단으로 입장한다. 지인들은 모두 기립해 박수를 친다. 하지만 호른 연주를 마친 친구는 여전히 구석에서 흐느끼며 울음을 멈추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딕의 죽음을 몇 번이나 기획하고 연출한 뒤 곧바로 딕이 멀쩡하게 살아 있음을 반복해서 보여주고는, 마지막에 이 패턴을 한 번 더 반복할 거라곤 상상 못한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게 이 영화의 킥이다.. 아무튼 다행히도 딕 존슨은 아직 살아있다.

 

<엔딩 노트>의 마지막은 뭐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이 현실 그대로, 실제 죽음과 장례식으로 끝난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장면은, 평생 자민당만 지지했던 그가 아무래도 세상은 바뀌어야 하는 것 같다며 새로운 선거에선 민주당에 투표할 작정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오랜 신념을 바꾸게 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

 

스나다가 쓴 엔딩 노트 속 투 두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위키피디아 출처.

 

 

 

 

 

 

 

 

 

 

 

 

 

 

두 영화 모두 꼭 보시길. 죽음을 생각하는 건, 삶을 가장 치열하게 마주하는 것이니까.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고, <엔딩 노트>는 네이버에서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