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인생(Low Life, 2004)

2004년에 홍보 방송은 진짜 많이 본 것 같다. 건달의 인생에 관심도 없고, 내용이 뻔한 마초 이야기일 게 뻔해서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조승우 덕질하느라 이번에 처음 봄. 2004년 치고도 매우 옛날 영화 느낌이 난다. 조승우의 색다른 연기 변신이 재밌어서 즐겁게 보았다. 그런데 영화가 너무 별사탕 없는 건빵처럼 심심하게 끝나길래.. 이거 실화 바탕 영화인가? 싶었더니 진짜로 그렇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조폭의 인생을 빌려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고 풍자하려는 듯하지만? 결말을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의도였던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의 짝궁 제작자였던 이태원의 생애가 배경이다. 정말 깡패로 살다가, 영화 속 태웅처럼(이름도 비슷하게 지었구나) 건설업에 몸담으면서 돈 좀 만지고.. 영화사를 차렸다고 한다. 실제로 남산에서 보낸 요원들 때문에 죽을 뻔했는지는 모르겠다.

 

조승우는 난폭하지만 순수하고 정직한 깡패 소년에서, 점점 정치 권력과 얽히며 더럽게 살아남아야 하는 찌든 조폭으로 변하는 연기를 매우 잘 소화해낸다. (반면 다른 남자 배우들 연기는 전반적으로 꽤 어색하게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 싸우다가 자신의 다리에 칼을 꽂은 놈 집을 찾아가서는 '니가 찌른 칼이니 니가 뽑아라'며 개폼을 잡는다. 칼 꽂은 승문의 아버지가 마침 정치인이었기에, 경찰 쪽에서는 태웅에게 말 잘 들으면 너 앞길 잘 봐주겠다고 말하지만, 태웅은 아마도 승문의 누나 혜옥(김민선)에게 반했기 때문인지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원만하게 해결하려 든다. 승문, 혜옥의 아버지는 태웅더러 너는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라고 선언한다.

 

승문은 서울대에 진학한 뒤 민주화 운동에 힘쓰고, 깡패 짓이나 하는 태웅을 업신여긴다. 그 와중에 태웅은 혜옥을 유혹하고 임신을 계기로 결혼한다. 5.16 쿠데타 이후, 손을 씻기로 한 태웅. 깡패 선배인 승필이 군납 사업을 함께하자 제안하지만 태웅은 아는 자본가와 영화사업에 뛰어들겠다고 한다. 승필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일에 뛰어들지 말라고 하지만, 더는 누구 밑에서 뒤치닥거리를 하고 싶지 않은 태웅은 조언을 무시한다. 영화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동시에 9개나 되는 작품을 찍는 바람에 촬영 스케줄이 계속 얽히고 까다롭게 굴어서.. 질린 자본가는 영화에 손을 떼고, 돈줄이 없어지자 중도금을 받지 못한 스태프들의 원성은 자자하다.. 혜옥이 여기저기서 열심히 돈을 빌려다 겨우 영화 제작은 마치지만, 심의에 걸려서인지 영화가 재미없어서인지 둘 다여서인지 태웅은 빚더미에만 앉게 됐다. 결국 태웅은 (중간에 돈을 빌리러 갔다가 겨우 20만 원밖에 안 빌려주자 빡쳐서 독설을 날린 상대인)승필을 찾아가 자신을 다시 거둬달라고 하고, 태웅은 다시 승필의 의리 있는 충견이 된다. 여기까지가 아직 초반의 이야기다.

 

조승우 액션 연기 왜 이렇게 잘하냐고.. 몸을 너무 날렵하게 써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조승우의 연기를 볼 목적 외에 재미를 위해서라거나 궁금해서라거나 해서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좀 별로일 수 있다. 시대적 배경도 1960~70년대이고, 미친 듯이 날뛰는 건달의 이야기이므로.. 시대착오적, 여성혐오적 요소가 다분하니까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후반부에서 태웅이 바람을 피는 바람에 빡친 혜옥이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지만, 여전히 마음을 열지 않자 태웅이 몸으로 제압하려는 장면이 있다. 그러고선 혜옥이 '당신 변했어'라며 아주 약간 비난하는 대사를 치긴 하는데.. 갑자기 혜옥이 셋째를 임신하는 장면으로 넘어가선 무척 다정하게 군다.. .........

 

칸 영화제고 베니스 영화제고 베를린 영화제고 옛날엔 마냥 국제 축제에 초청된 것만으로도 무지 국위선양 하는 거구나 싶었는데, 요즘은 그냥 출품비 내고 조건에 맞는 작품을 출품하면 적당히 다 올라가는 식인가 싶다.. 그 중심엔 국내 대행 기관이 있겠지 싶고. 물론 수상까지 받은 건 작품성을 인정받는 거겠지만.

 

아 그리고 전라 베드신 촬영 강요 사건.. 배우 이상아가 2014년 <세바퀴>에 출연해서 촬영 당시의 성희롱 분위기와 강요 분위기를 고백한 것으로 겨우 세상에 알려졌는데. (이상아 배우님 힘 내시고, 사실은 더 많은 분들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이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태웅이 영화 촬영 도중, 베드신이 너무 약하다며 더 벗겨서 찍으라고, 여배우가 말을 안 들으면 대역이라도 써서 찍으라고 화를 엄청 내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가 만든 영화 속 내용이니까 그 시대에 실제로 벌인 것보단 순화해서 찍은 거겠지.. 그걸 감안해서 보면 훨씬 더 찝찝하다. 

2014년 1월 18일 방영된 <세바퀴> 영상:

 

짧은 버전 (남자 패널 반응이 더 극혐이므로 예방주사 맞고 보시길..)

앞뒤 더 있는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