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김소민의 아무몸] 30대가 세 살이 되는 사랑의 불시착

이 칼럼은 내가 <사랑의 불시착>을 보다가 만 이유를 논리적으로 대리 해설해주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 세리는 남한에서 능력 있는 경영자다. 재벌 아버지한테도 인정받아 후계자로 낙점됐다. "틀린 선택을 해본 적 없는" 여자다. ......귀여운가? 이건 30대가 아니라 3살의 행태다. <사랑의 불시착>의 로맨스는 완벽한 의존과 보호 사이 낙차에서 피어오른다. ... 여자주인공이 아이로 퇴행하는 공간이다.

사기다. 이런 '낙차 로맨스'는 대차대조표의 '손실' 쪽을 보여주지 않는다. ... 평등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뒤통수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어느 참에 '보호받는' 내 결정권은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고 없다. 성인으로서 자존감은 액체괴물처럼 흐물흐물해져 있다. ... 자신을 종속변수의 구덩이에 파 넣는 짓인데 이렇게 안 하면 또 사랑을 잃을 것만 같다. 성인여성이되 어린아이처럼 무해한 존재가 돼야 관계를 지킬 수 있을 거 같다. ...

애교는 영어 단어가 없다. 한국말만 있다. 발음대로 aegyo라고 쓴다. 김명희가 쓴 책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을 보면, 위키피디아는 aegyo를 "아기 목소리, 표정, 몸짓 등을 통해 표현되는, 애정의 귀여운 드러냄"이라고 정의했다.

목소리 톤은 점점 낮아졌는데 연구팀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점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신뢰감을 더 주는 쪽으로 변해간다는 거다. ... "더 유능하고 강력하다"고 느꼈다. 고음을 낼수록 덜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대신 신뢰를 잃는 셈이다.

옷 입은 여자보다 벗은 여자가 더 많이 나오는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의 음모가 등장하는 건 1819년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 처음이다. 조이한은 "영원히 아이로 남아 있으라는 무언의 압력, 혹은 순진한 여자만 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읽을 수 있다"고 썼다.

왜 코맹맹이 소리를 하나? 왜 문장의 끝맺음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나? 나는 왜 불평등한 관계를 자연스러운 연애라고 느꼈나? 내가 선택했나? 그런 기억이 없는데, 내 몸에 스미고 말았다고 다리털을 밀며 생각한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924847.html

30대가 세 살이 되는 사랑의 불시착